[1월 26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시인이 창조 사건을 노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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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시 104:24).

창조와 송축

시인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로 이 시를 시작하고 또 마칩니다(1, 35절). 지금 자신의 온 영혼을 다해 여호와를 송축하는 시인은 그 이유를 두 송축 사이에 한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고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는 모습은 창조의 첫째 날을 떠오르게 합니다(2절). 하나님께서 물에 누각의 들보를 얹으신 것은 창조의 둘째 날에 주께서 궁창 위에 물을 두신 일을 기억나게 합니다(3절).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고 물이 산들 위로 솟아 올랐으며 물이 도망갔다는 표현(6, 7절)과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셨다는 구절(14절)은 창조의 셋째 날을 생각나게 합니다(6, 7절).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라는 구절은 창조의 넷째 날을 생각나게 합니다(19절). 공중의 새와 각종 들짐승에 대한 언급은 창조의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을 기억나게 합니다(11, 12절).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30절)라는 구절은 여섯째 날의 인간 창조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33절)라는 시인의 노래는 안식일의 찬양과 예배를 언급하는 듯 보입니다. 시인은 이렇듯 길게 창조를 노래하면서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24절)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창조와 죄인들의 소멸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절에는 창조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 등장합니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35절). 일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시고 돌보시는데 죄인들과 악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창조와 돌보심의 경이를 노래하는 이 시의 결론부에서 시인이 죄인들의 소멸을 말한 것은 진정 당연한 귀결로 보입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심판이 함께 언급되는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기도) 이 시간, 창조와 돌보심을 기억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