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어떤 사랑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에 인간의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백성에게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한없이 베푸신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큰 사랑은 아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성경은 종종 부모와 자식 관계를 예를 들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묘사하며, 그와 같은 인간이 나타내는 그 어떤 깊고 아름다운 감정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비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편 103:13, 이사야 49:15, 예레미야 31:20을 읽어 보라. 이러한 묘사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깊이에 대해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로 여기시고, 선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이사야 49:15이 말한 것처럼, 육신의 어머니도 “젖 먹는 자식을 잊”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자녀를 잊지 않으시며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다(애 3:22).
주목할 만한 점은 하나님의 풍성한 인애를 묘사하는 많은 본문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라함(raḥam)이 태를 의미하는 용어 ‘라함’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태와 같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인애하심은 인간의 어떤 사랑, 심지어 갓난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예레미야 31:20에 의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이 자주 당신을 반역하고 근심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아들”과 “기뻐하는 자식”으로 여기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내가 그로 인하여 애를 태우나니 내가 반드시 그에게 긍휼을 베풀리라”(흠정역)라고 선언하신다. 여기서 “긍휼”로 번역된 용어는 위에서 신적 인애의 의미로 사용한 단어 라함(raḥam)이다. 또한 “애를 태”운다는 구절은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내 창자가 들끓으니”로 번역할 수 있다.
(이어서)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직관적인 언어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의 깊이를 나타낸다. 그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든 합리적인 기대를 넘어 당신의 백성에게 풍성한 자비와 긍휼을 한없이 베푸신다.
<교훈>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어떤 사랑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에 인간의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백성에게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한없이 베푸신다.
<묵상>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의 자애로운 마음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줍니까?
<적용> 어떤 이는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이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더 큰 그리스도의 사랑 – “어떤 환경도, 어떤 거리도, 우리를 구주와 분리시킬 수는 없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분께서는 우리 우편에 계셔서 우리로 쓰러지지 않게 해주시고, 옹호해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그리스도께 구속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욱 크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 안에 안식하면서 ‘그분께서 나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으므로 내가 그분을 의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치료봉사, 72).
<기도> 자식을 위해 애가 끓는 부모보다 더 큰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나님,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잘못 때문에 죄송합니다. 저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수하고 잘못할 때가 많으니 용서해 주옵시고 하나님 사랑을 믿으며 닮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