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수요일 장년 교과] 아들의 징조 (사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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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7:14에 나오는 ‘임마누엘’이 당시에 누구였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셨다.

스올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은 징조를 구하라는 제안도 아하스를 감동시키지 못했다(사 7:11).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한 징조를 제시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것이 신적인 상상력만으로 착안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리라고 기대한다(사 55:9, 고전 2:9 비교).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징조는 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를 임신한 젊은 여인과 그 아들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이 징조가 될 수 있는가?
사 7:14에 등장하는 여자는 누구이며 그 아이는 누구인가?
구약 어디에서도 이 중요한 징조의 성취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에만 기초하여 그 성취의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 ‘처녀’는 결혼 연령에 있는 젊은 여인을 가리키므로 많은 사람은 그녀가 예루살렘에 사는 결혼한 여인, ‘어쩌면 이사야의 아내가 아닐까’하고 추정한다. 이사야 8:3에 이사야의 아내(‘선지자의 아내’ 또는 ‘여선지자’로 읽을 수 있음)가 아들을 낳은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사 7:3, 8:18 참고). 그러나 그 아들의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1~4)이지 임마누엘이 아니다. 그럼에도 두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수리아와 북방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되리라(사 7:16, 8:4)는 징조는 매우 비슷하다.
2. 어떤 이들은 임마누엘이 아하스에 이어 왕이 된 그의 아들 히스기야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히스기야에게 적용한 곳은 없다.
3. ‘임마누엘’은 좀 신비스럽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번역되는 그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기 때문에, 그는 이사야 9장과 11장에서 예언된 특별한 아들과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비록 선한 왕이지만 “영존하시는 아버지”(사 9:6)와 “이새의 뿌리”(사 11:10)라는 고귀한 묘사를 그에게 돌리기에는 과하다.

교훈 : 사 7:14에 나오는 ‘임마누엘’이 당시에 누구였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신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셨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은 그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이어서) 4.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는 불법적인 관계를 통해 출산한 사생아일 수도 있다(신 22:20~21 참고). 하나님이 그러한 아이를 징조로 주셔서 믿음을 고취시키고자 하실 리는 없다. 한편 신약에 따르면 정혼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예수님이 임마누엘이시다(마 2:21~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사 9:6, 마 3:17), 이새의 ‘싹’이요 ‘뿌리’이시다(사 11:1, 10, 계 22:16). 아하스에게 예언적인 성취의 시의성을 증명했던 이전의 ‘임마누엘’은 어쩌면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갈 4:4)셨던 것과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분의 임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적용 : 지금 그대가 임마누엘의 이름으로 주장할 수 있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원수에게 도움을 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 “그분은 진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즉시 도와주는 분이 되셨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셨다(사 63: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등지고 가장 악한 주님의 원수에게로 도움을 구하러 갔다”(증언보감 2권, 54).

기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오니 성경의 모든 약속이 그 이름을 통해서 이뤄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이름의 약속이 영원토록 우리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