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인삼밭이었다고요?”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훨씬 참혹했다. 넓은 밭 사방에 차광막 버팀목으로 사용된 나무들, 뿌리째 뽑혀 누워 있는 나무, 다른 농경지에서 떠내려온 곤포사일리지, 온갖 더미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충북 괴산군 검승리 소재 이순희 집사(괴산교회)의 인삼밭을 찾은 건 피해 발생 나흘째였던 지난 19일.
인근 재림성도 50여 명과 군인 수십 명이 며칠에 걸쳐 복구를 도운 후였다. 침수된 밭에서 인삼을 모두 캐내고 시설물을 정리한 상태여서 더욱 황량해보였다. 얼핏 보면 공사판이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범람한 달천과는 좁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니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거리가 가까운 탓도 있지만,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물이 돌아나가는 방향과 맞물려 주변 농경지에 비해 유독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어지러운 주변 상태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아찔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나무 기둥에 들러붙어 있는 부유물을 보니 물이 어느 정도까지 차올라 어느 방향으로 훑고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기 건물 보이시죠? 창문 바로 아래까지 물이 찼었습니다” 강 건너편을 가리키는 김하림 목사(괴산교회)의 손끝을 따라가니 자연스레 입이 벌어졌다. 현재 수위보다 7~8미터는 높은 위치다.
시선을 떨구자 강가에서 몇 사람이 인삼을 씻고 있었다. 이 집사의 남편이 인삼 정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많은 인삼을 버릴 수도 없고 받아주는 곳도 없어 어떡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고작 20여 미터 거리였지만 카메라를 들고 차마 내려가 볼 수가 없었다. 김 목사에게 이 집사의 안부를 물었으나 며칠째 기운을 차리지 못한 상태라 해서 끝내 만나 보지는 못했다.
이 집사는 수년 전 한 기업과 재배 계약을 맺었다. 3400평 규모로 5년 동안 키운 인삼은 어림잡아 약 5억 원어치. 그러나 6년근 제품으로 계약을 맺었고, 1년만 지나면 인삼의 가치는 두 배가 된다고 하니 이번 폭우로 약 10억 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1년만 더 키우면 되는데…”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한 번 인삼을 심었던 땅은 영양분이 다 빠져나가 몇 년의 휴지 기간이 필요하다. 5년을 키운 인삼이지만 휴지 기간까지 고려하면 8~10년간 들인 공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인삼은 유달리 재배가 까다롭다. 그만큼 관리가 어렵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밭이 물에 잠길 경우, 잎 표면에 진흙과 오물이 들러붙어 광합성을 할 수가 없는 데다 물기가 남은 상태에서 강한 햇빛을 받게 되면 잎이 물러져 시들고 죽는다. 뿌리에도 공기가 제대로 통할 수 없으니 인삼의 세근(털)이 빠지고 통째로 썩는다. 6시간 이상 잠겨 있었다면 조기 수확이 불가피하다.
농촌진흥청 측은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해마다 인삼밭 시설물 관리에 특별한 주의를 당부해 왔다. 그러나 43년 만에 발생한 괴산댐 월류로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다. 그 어떤 예방책이라 한들 이번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까?
피해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기자의 눈이 계속 흔들렸다. 이런 참혹한 현장에 유난히 파란 하늘이 함께 담기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보았지만 보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는 솔직하고도 무력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그저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와 따뜻한 후원이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