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육대학교(총장 제해종)와 삼육식품(사장 전광진)이 공동으로 마련한 ‘모든 이들을 위한 음악회’가 지난달 26일 삼육대학교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윤수린 교수(삼육대 영어영문학과)의 사회로 진행한 이날 음악회에는 소프라노 신선미, 테너 강요셉, 테너 박성규, 바리톤 이인규, 바이올리니스트 이난주, 비올리스트 최현후, 첼리스트 오승규, 피아니스트 이신혜, 전혜원, 이선주 등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라 천상의 화음을 빚어냈다.
제일 먼저 무대에 선 테너 박성규는 말로테의 ‘주기도문’을 불렀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깊은 호흡 위에 가사를 얹었다. 노래로 드리는 기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연주였다. 관객들 역시 성도의 마음으로 박수 대신 아멘으로 화답했다.
박성규는 고음이 아닌 저음에, 포르테(F, 세게)가 아닌 피아노(p, 세게)에, 그리고 자기가 아닌 우리에 중점을 두고 노래했다. 이러한 연주의 지향점은 두 번째 곡인 안드레이 크로치의 ‘어찌하여야’에서 도드라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난주, 비올리스트 최현후와 함께 호흡을 맞춘 까닭이다. 세 명의 연주자는 서로의 프레이즈를 침범하지 않으며 조화로운 앙상블로 감동을 선사했다.
구자철의 ‘하나님 사랑’을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녹음 파일로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제한된 무대 여건을 넘어 감동을 전달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유로운 표현이란 측면에선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효과는 훌륭했다. 홀을 가득 채운 웅장한 소리에 객석의 반응도 한층 뜨거웠다.
소프라노 신선미의 무대는 풍성한 감정 표현으로부터 진한 감동이 묻어났다. 그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토스티의 ‘기도’와 이호준의 ‘사랑이 없으면’ 그리고 찬미가 ‘오 신실하신 주’(작곡 윌리엄 루냔)였다. 드라마틱한 표현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런 곡들의 경우 풍부하게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어느새 표현이 세속적으로 흐를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신선미의 연주는 녹록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의 보편적 감수성을 어루만지며 공감과 감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바리톤 이인규는 특유의 중후한 음색이 돋보였다. 편안하면서도 감미로워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와도 잘 어우러졌다. 특히 오르가니스트 민동림과 합을 맞춘 고형원 작곡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는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위로를 전했다. 그가 다시 무대에 섰을 때는 바리톤의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 중 ‘족합니다’(It is Enough)를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격정적으로 연주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테너 강요셉은 편안한 호흡과 발성으로 김두완의 ‘사랑하는 자들아’ 페터슨/볼백의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나운영의 ‘시편 23편’ 등을 들려줬다. 과장된 표현을 삼가면서 선율의 미학을 또렷하게 드러낸 해석과 연주였다. 피아노 반주와 선율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그의 연주는 갑작스런 도약이나 폭발적인 다이내믹이 없이도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아울러 장식음을 처리하는 중에도 선율의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우리말에는 받침이 많아 노래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가사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정확한 발음으로 감동을 전한 점도 눈에 띄었다.
기악 연주자들의 레퍼토리도 다채로웠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난주는 찬미가 ‘거룩 거룩 거룩’을 주제로 한 다이크스의 작품을 진취적으로 연주해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동생 이선주의 피아노는 단순히 반주에 머무르지 않고 든든하게 연주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피날레의 다이내믹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하고 점진적으로 긴장감을 더해가는 진행은 작품이 가진 구조적 미학을 효과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첼리스트 오승규는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을 연주했다. 그의 연주는 격정적이라든지, 열정적이란 표현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신 따뜻한 음색과 매끄러운 보잉(bowing)으로 세련된 매력을 더했다. 이런 특징은 프랑크의 정치(精緻)한 음악미와 조화를 이루며 잔잔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오르가니스트 민동림의 연주는 이날 예상하지 지점에서 찾아온 펀치라인이었다. 연주곡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합창곡 ‘머리 들라’.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알렉상드르 갈망이 작곡한 행진곡이었다. 헨델 특유의 화려하고 힘찬 주제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오르간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연주를 들으면서 관객들은 왜 오르간을 ‘악기의 왕’이라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오르간이 설치된 교회에서도 예배의 반주에 머무르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 민동림의 연주는 오르간의 다채로운 음색과 폭넓은 음역을 모두 보여주며 가슴 뛰는 무대를 선사했다.
끝으로, 모든 출연진이 단상에 올라 손경민 작곡의 ‘은혜’를 함께 불렀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가사는 개교 118주년을 맞은 삼육대학교와 한국선교 120주년에 이른 한국 재림교회의 고백으로 치환됐다. 막이 내리고 조명이 하나둘 꺼졌지만,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짙은 여운을 음미하는 관객들의 공명이 이를 대신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