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표상으로 다시 보는 나의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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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해프닝
대도시와는 달리 지방 소도시의 수영장에서는 넘치는 정과 지역 특유의 유쾌함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충청도 본가에 머무는 동안 시골 수영장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5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어르신들을 친근한 형 또는 누나처럼 사귈 수 있었다. 이 연륜이 있는 수강생들은 강사의 어려운 지시도 여유롭게 따라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나이에 상관없이 강사의 지도를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무리가 생기기도 했고 그럴 때면 강사로부터 “왜 가르쳐 준 대로 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적을 받고 기가 죽어 있을 때 멀리서 한 중년아주머니의 투정 섞인 충청도 사투리가 분위기를 다시 유쾌하게 했다. “왜 그려~ 난 지금 박태환처럼 헤엄치고 왔는데….” 그렇다. 분명히 그 아주머니도, 나도 마음속에서는 박태환이나 마이클 펠프스처럼 멋지게 수영하고 있다고 상상하며 헤엄쳤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의 수영 실력은 강사가 지시한 동작과 사뭇 달랐다. 왜 우리는 생각과 다르게 움직인 것일까? 그리고 왜 본인은 그 움직임이 옳다고 믿고 있었을까?

신체 표상(Body representation)의 오류
이러한 의문을 설명하는 전문적인 개념이 ‘신체 표상(Body representation)’이다. 사람은 시각이나 촉각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통합하여 우리 몸의 위치, 움직임, 외형 등을 머릿속에 그리는 인식 과정을 갖는데 이를 신체 표상이라고 한다. 신체 표상을 바탕으로 사람은 주변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행동한다. 한마디로 신체 표상이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나의 모습이며 이는 나의 자세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내가 인식하는 신체와 실체 신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이를 ‘신체 표상의 오류’라고 한다.
신체 표상의 오류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신체 일부가 절단된 후에도 해당 부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는 ‘환상 사지 증후군(Phantom Limb Syndrome)’이다. 사지 절단 환자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지에 통증, 감각 이상, 가려움 등의 다양한 감각을 느낀다. 반대로 사지가 있음에도 그 동작이나 감각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무감지증(Anosognosia)’으로 뇌졸중 환자들에게서 나타난다. 이 증상의 환자들은 자신의 신체적 장애 특히 마비나 감각 상실 같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 결과 마비된 사지의 나머지 기능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이처럼 생각과 실제 몸의 작용이 맞지 않는 신체 표상의 오류는 종종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집중적인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체 표상의 오류는 중증 환자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수영장에서의 일화처럼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사례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걸려 넘어지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집 안에서 뻔히 아는 문지방을 넘다가 넘어지거나 길거리에서 돌부리를 보고도 걸려 넘어질 때이다. 이는 생각과 동작이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으로 신체 표상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이럴 때 내 몸의 위치, 움직임 또는 자세에 대한 인식(body schema)에 수정이 일어난다.

일상에 나타나는 신체 표상
(Body representation)
점심을 먹던 형사가 식당 창밖으로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특이한 걸음걸이를 보고 바로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뛰어나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 모두는 마치 지문처럼 나름의 독특한 체형, 자세, 움직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는 CCTV를 반복해서 보며 용의자의 걸음걸이 특징을 익혔고 그 특이한 걸음걸이 때문에 그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개인의 신체에 대한 독특한 신체 표상 정보를 갖고 있다. 그것이 일생을 통해 반복되고 누적된 고유의 걸음걸이와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쌍둥이 사이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
이것이 치료사들이 재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환자의 자세와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이유이다. 치료사들은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주의 깊게 살펴본다. 문을 스스로 여는지, 어떻게 열고 들어오는지, 걸음걸이는 어떠한지 등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평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치료사는 환자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평가 도구를 사용하여 환자의 상태를 검증해 나간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과연?
우리는 종종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는 말을 한다. 대개는 맞는 말이다. 우리의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은 신체에 나타나는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신체 표상의 오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 몸의 동작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자세나 움직임이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지 전문가의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신체 표상의 오류나 편향을 예방하고 수정할 수 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외모를 다듬고 넥타이를 바로잡듯이 자신의 자세와 움직임도 그렇게 점검할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운동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수영 강습처럼 자신의 움직임을 검증받을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요즘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러한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요가나 필라테스 등도 유익하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에서 통증이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바로 치료사들을 찾아가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야 한다. 치료사들은 나의 신체 표상의 오류로 인해 놓친 자세나 움직임의 문제를 찾아 줄 것이다. 2025년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가 통증 없이 활기차고 건강한 삶을 누리길 소망한다.

필자는 영국 버밍엄 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재활 시 움직임의 신경학적 관계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재활과학 박사이다. 그는 전문 물리 치료사로서 수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재활, 생체 역학, 뇌 과학, 신경 과학, 심리학 등의 영역을 포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진민
영국 버밍엄 대학교 재활 과학 박사 및 연구 교수

가정과 건강 1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