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해소, 아프리카의 얼룩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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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생 A 씨는 1교시 수업을 위해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많았지만 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10분 후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매스껍고 식은땀이 났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걱정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의사는 스트레스와 불안에 의한 반응이라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했다.
50대 중반의 B 씨는 불면증으로 밤이 두렵다. 잠을 자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오히려 정신은 말똥말똥해지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쓰고 단내가 났다. 며칠 전부터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의사 선생님은 최근에 충격적인 일이나 힘든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더니 너무 속을 끓이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했다.
   매일 운동을 하고 몸에 좋다는 것을 다 챙기며 건강에 나쁘다는 것은 입에도 안 대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아픈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라는 독소를 우리 몸속에 품고 사는 것은 마치 거센 파도 앞에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스트레스란 무엇인가?
스트레스는 사람이 심리적·신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위협의 감정이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캐나다의 내분비학자 셀리(Selye)는 스트레스를 의학에 처음 적용한 사람이다. 그는 스트레스 요인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고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 생리적 반응으로는 불면증, 근육 경련, 식욕 부진, 극도의 피로, 두통, 위장 장애 등이 있다. 심리적 반응에는 불안, 무기력함, 우울증, 피로, 죄의식 등이 있다.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행동 반응으로는 혀를 깨물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이 있다. 어린 학생들과 청소년들은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청년들은 높은 결혼 비용과 취업난으로, 30-40세대는 자녀 사교육비와 집값 등의 경제적 문제로, 50-60대 이후 세대는 신체적 질병, 노후 불안, 부부 갈등, 부모 돌봄, 경제적 궁핍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 삶에서 스트레스는 본질적으로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생리적 반응이다. 스트레스 반응이 적절하게 작동하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성취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 반응이 지나치게 활성화되거나 만성적으로 지속되면 신체와 정신 모두에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피터팬 증후군
어떤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어머니는 삶의 의미를 잃고 슬픔에 빠져 그 후 몇 년 동안 앓아누웠다. 그녀는 6살 난 둘째 아들에게는 무관심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죽은 큰아들로 착각하며 “사랑하는 데이비드, 너로구나? 그런데 어떻게 네가?” “오, 나에게는 오직 너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망상은 반복되었다.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 성장을 멈췄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키가 150cm밖에 자라지 않았고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스트레스성 왜소 발육증을 앓았던 둘째 아들은 바로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였다.

왜 얼룩말은 위궤양이 생기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맹수들이 덮칠지 모르는 초원에 사는 얼룩말에게 스트레스는 꼭 필요한 생존 기능이다. 얼룩말에게 스트레스는 사자보다 더 빨리 또 더 오래 뛰어 달아날 수 있게 하는 코르티솔과 같은 호르몬을 분출시키는 생리 기능이다. 굶주린 사자에게 쫓길 때 얼룩말의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는 급상승한다. 그리하여 모든 신경과 장기들의 기능은 ‘도망’에 집중된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살아남은 얼룩말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햇볕을 쬐고 풀을 뜯는다. ‘아까 왜 그랬을까?’라고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닥칠지 모를 사자의 위협에 전전긍긍하거나 불안에 떨지도 않는다.
스탠퍼드 대학의 신경과학자인 사폴스키에 의하면 스트레스는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는 필수 생리 현상이지만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에게는 위궤양이 생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얼룩말은 죽을 위험에 닥쳤을 때만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되면 곧바로 정상 상태로 생리 현상이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이 많은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이 종료되어도 ‘심리적으로’ 그 스트레스 상황을 오래 기억하고 곱씹으며 확대 재생산하여 부정적인 결말을 상상하면서 미리 걱정과 근심을 한다. 그 결과 스트레스에 따른 생리 작용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만성적으로 악화되어 병리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스트레스 자체는 매우 정상적인 생리 기능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반응은 위험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직접적으로 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항상 활성화되어 있으면 면역 체계가 무너지면서 질병과 질환에 더 취약한 상태가 된다.

매일 스트레스와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가 얼룩말처럼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사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고통’이 있음을 인정한다. 오늘의 일은 오늘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라고 하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너무 잘하려고 애쓰며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자.
   둘째는 사자가 보이기 전에는 사자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닥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만으로도 삶이 버거울 때가 많다. 오늘은 오늘 하루만의 짐만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의 짐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데, 어제의 후회를 곱씹으며 되새기고 앞으로 닥칠 걱정과 염려로 내일의 불안의 짐까지 더하면 그 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이해인 수녀의 말처럼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하자.
   셋째는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삶이 이어지는 동안 스트레스로부터 탈출하거나 졸업을 할 수 없다. 당뇨나 혈압을 관리하듯이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화를 참기 어렵다면, 어깨나 목이 뻣뻣하고 머리가 아프고 쉽게 피곤하다면 이는 내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고 보내는 신호인 것이다. 자연의 품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며 쉼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신앙 공동체나 지지 그룹들과 함께 감사의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와 나눔을 통한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은 쉴 만한 물가에 다다른 것처럼 우리에게 깊은 안식과 위로를 준다.

안재순
삼육대학교 상담학과 교수

가정과건강 11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