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이어 – 권태건: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다. 여러분을 모시고 드리고 싶었던 질문 중 하나가 강신술에 관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AI를 강신술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가?
류한철: 강신술을 어떻게 정의하나? 먼저 정의를 알아야 AI가 강신술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송창호: AI가 훌륭한 마술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법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마술과 강신술의 차이는 눈속임이냐 진짜인가 하는 것이다.
권태건: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는 아서 C. 클라크의 말과 같은 의미인가?
송창호: AI가 마법처럼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강신술은 속임수가 아니라 실제이지 않나. 어떤 면에서든 AI를 강신술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AI 자체를 강신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나.
류대균: AI가 강신술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약간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적에 손 씻는 것에 논쟁이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선 “너희들은 내가 옆에 있고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너희들의 전통을 갖고 이렇게 싸우는 것이냐”하고 말씀하셨다. 손 씻는 것은 옳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엘렌 화잇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놓고 일을 해야지 사소한,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도 그런 문제가 아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하자면 AI가 강신술은 아니지 않나.
송창호: 강신술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이 내리는 기술’이다. 신이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리는 기술이다. 화잇 선지자도 그런 지적을 했다. 많은 사람이 강신술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지금까지 자기들이 봐왔던 마술이나 눈속임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더라.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이더라, 그러면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강신술사들이 AI를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AI는 하나의 테크놀러지이지 영적인 영역은 아니다. AI를 강신술이라고 주장하면 우리는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AI가 영적인 영역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영성이라고 믿고 있는데, 인간이 만든 테크놀러지가 영적인 면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 확실히 모순이다.
류한철: 제가 생각하기에도 강신술은 영과 관련된 것이다. AI는 절대 영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 저 역시 우려하는 부분은 강신술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결국 강신술의 목적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AI를 이용해 사람을 미혹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AI를 강신술처럼 나쁜 면으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강신술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AI가 강신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성경에 나오는 강신술처럼 돌아가신 분들의 영을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일은 아니다.
송창호: VR기기를 착용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류한철: 그렇기에 더더욱 AI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어느 순간 눈앞에 닥쳤을 때 미혹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의 본질을 잘 알고, 누군가 프로그래밍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내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알고 있으면 미혹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혀 영적인 영역이 아니라고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언제라도 강신술 같은 효과의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 수 있다.
AI는 사람을 미혹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귀신이나 사탄은 아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그렇게 사용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교회가 그것에 눈 감고 있다고 해서 혹은 우리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앞에 닥칠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본질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권태건: 끝으로, 오늘의 대담을 마무리하며 꼭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송창호: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만드는 기술과 지식은 결국 인간의 손으로 인간과 같은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최고의 창조물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한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가장 큰 이유다. 인간의 마음속 모든 것이 하나님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싶은 선한 마음이 왜곡되면 그분의 능력을 닮아가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이다. 핵심은 생명을 창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 어떤 존재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인간다움의 본질에 관해 고민하며, 사람들에게 본질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류대균: ChatGPT가 글을 잘 쓰지 않나. 글 잘 쓰는 재능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 같다. AI가 바둑을 익히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인간보다 글을 더 잘 쓸 것 같다. 뉴스를 보니 ChatGPT가 리포트를 냈는데, 학과에서 20등을 했다고 하더라. 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계속 기술적인 영역에서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하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 탄생하고, 이뤄진 것이지 않나.
오늘 아침에도 “하나님 저의 힘으로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존재가 자꾸 나오는데 제 능력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기도했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이냐 걱정하는 이런 위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만나주실 것이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리라 기대한다. 하나님을 더 붙드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너무 염려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의 길을 걷고 계신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류한철: 목사님 말씀처럼 하나님이 계시므로, 모든 일은 그분의 주관 하에 일어나는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송 교수님께서 우려하셨던 인간이 나와 같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에 관해 잠깐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있기에 우리가 아이를 낳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픈AI의 최고경영자인 샘 알트만 또한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테크놀로지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AI의 위험성에 관해 지적했다. AI에는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 그래서 국제 표준이나 규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절대 AI가 자아를 갖길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인간이 AI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AI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와 닮은 존재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그것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제어 가능한 훌륭한 범용AI를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AI는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많은 일을 대신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면 사회 전체가 바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 아마도 인간의 존재 목적의 근본에 관해 좀 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생존과 노동에 관한 고민보다는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왜 존재할까’ 등 철학으로, 신학으로 돌아갈 여지가 있다.
예전에는 영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정말로 중요한 핵심만이 남을 것이다. 그런 핵심이 없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의 존재 목적,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의미를 설명해 줘야 한다.
설교의 감동과 은혜는 설교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이 설교에 담기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AI로 설교문을 작성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AI를 활용해 설교 초안을 작성하고, 그 초안에 영적인 요소를 추가하는 것은 목사님께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 수행하시면 된다. 초안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작성할 수 있다. 거기에 디테일을 담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이다. 핵심과 본질에 관한 고민을 하고 그것을 설교에 담으면 되지 않을까.
저는 사람의 몸이 정말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뇌만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뇌와 연결된 몸, 몸과 연결된 뇌가 의미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손수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생령을 불어 넣으셨는데, 저는 여기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교회가 따뜻한 인간관계를 통한 소통을 제공하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이 메마른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 끝 –
Chat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이 일반뿐 아니라 종교계와 목회에까지 파급되는 가운데,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 우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마련한 <재림신문>의 [특별대담]을 마칩니다. 바쁜 일정 속에도 귀한 시간내 주시고 고견을 나눠주신 송창호 교수(삼육대 신학과), 류한철 교수(삼육대 인공지능융합학부), 류대균 목사(답십리교회)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