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북대회 지역에서 각 선교지로 흩어진 5개 전도팀은 그동안의 봉사 경험을 모두 쏟아붓겠다는 일념이었다. 연합회 여성협회 팀(6명)은 고빈도푸르교회에서, 동중한과 충청 연합팀(8명)은 드보라교회에서, 영남 팀(8명)은 아콘파라교회에서, 호남합회 나누리전도단 팀(7명)은 쿠주라교회에서, 호남합회 전북 지역 미쁨전도단 팀(6명)은 베리바이드교회에서 각각 활동을 시작했다.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세계 8위로, 1억7500만 명에 달하는 나라이지만 국민의 89%가 이슬람교도이다. 여성협회 전도단이 직접 방문한 방글라데시는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최극빈국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연합회장인 김원상 목사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전도단이 마실 물을 포함한 전도회 때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미리 보내는 것을 제안했다. 덕분에 직접 가지고 가는 수화물의 무게도 대폭 줄이면서 비용도 훨씬 절감돼, 전도단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선교지에 더 많은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었다.
오랜 준비 기간에 걸쳐 수집한 정보 덕분에 침낭과 핫팩, 비상약까지 챙겼고, 현지 교회에서 간이침대를 준비해 주어 차가운 바닥에서 자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윤청실 목사의 시모가 후원해 준 침낭은 전도단이 전하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에 더 따스한 온기가 돼 주었다. 그리고 여러 후원자가 함께 보낸 마음은 전도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데 큰 힘이 됐을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는 몇 배의 행복으로 전달됐다.
어떤 이들은 “거기 다녀올 왕복 항공료만 해도 얼만데, 차라리 그 돈을 보내 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큰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설득하기도 했으나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몸소 체험하는 일은 꼭 필요했다. 가는 여정이 힘들고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 수도 없이 있었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생생한 소식은 더 큰 관심과 후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국 재림교회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됐고 발전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100여 년 전, 한국이라는 나라에 직접 와서 아픈 사람을 돌보고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교회와 병원, 학교가 세워지고 재림기별을 더 널리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수의 선교사들이 뿌리고 간 사랑과 헌신의 열매는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더 많은 영혼을 예수께 인도할 것이다.
실제로 여성전도단이 전도활동을 펼치는 지역은 과거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과 비교해도 훨씬 열악한 수준이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식수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다. 동네 곳곳에 마련된 웅덩이에서 목욕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때에 따라 그 물을 마시기도 한다. 화장실이라는 곳도 따로 없어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될 수 없는 환경이다. 먹을 것이 많지도 않지만 그나마 마련된 부엌에는 지붕 아래 아궁이 2개가 전부다.
현지 교회의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깐 카페트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고 너덜너덜해 얼마나 많은 세균이 득실거릴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전도단이 자금을 미리 보낸 덕에 교회에는 새로운 카페트가 깔렸고, 의자가 없어 불편하게 앉아 있던 노인들은 플라스틱 의자에서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