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선교 120주년 특집]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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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쯤 됐을까. 이응현과 손흥조는 120년 전 6월 12일 꼭두새벽, 누노비키폭포에서 침례를 받고 한국인 최초의 재림교인이 됐다.

멘타키폭포에서 계단을 타고, 등산로를 따라 약 250m 올라가면 온타키폭포가 나온다. 신록이 물든 5월의 자연을 만끽하려는 시민들이 하이킹 루트를 따라 오르고 내렸다. 온타키폭포는 앞선 멘타키폭포와는 또다른 정취를 갖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자는 누노비키가 도심 뒷산의 작은 폭포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마주한 모습은 매우 웅장했다. 특히 43m 높이에서 쏟아지는 멘타키의 폭포수는 절경이고 장관이었다. 물소리가 호쾌하고 박력 넘쳤다. 진녹색의 나무들이 주변을 아름답게 감싸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바람이 땀방울을 씻겨 줬다. 경관을 보러 온 관광객들은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다. 일본인은 물론, 외국인도 많았다. 

의자에 앉아 잠시 묵상했다. 저렇게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우리의 심령에도, 한국과 일본 교회에도 성령의 폭포수가 내리길.

산에서 내려오는 길, 남형우 목사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왜 굳이 그토록 늦은 밤에 침례를 받았을까요? 다음 날 새벽이나 동틀 무렵 받아도 됐을 텐데?”

“글쎄요. 성경공부가 자정을 넘어서까지 계속됐기 때문 아닐까요? ‘눈물로 침례를 간청했다’는 기록으로 봐서는 진리를 발견한 두 사람이 엄청나게 뜨거운 열의로 당장 침례를 요청했을 수도 있고…”

“물론,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904년 당시는 러일전쟁 중이었습니다. 즉 전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종교활동이 여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했어야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깊은 밤에 소수의 교인만 대동한 채,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침례식을 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

남형우 목사는 그러면서 “먼 이국의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살기 위해’ 떠난 길에서 이응현과 손흥조는 ‘영생의 살길’을 찾았다”며 남다른 해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침례를 받은 조선 최초의 재림교인들은 날이 밝는 대로 하와이행 배에 승선해야 했다. <한국재림교회 100년사>는 이 장면을 “주인과 객이 모두 잠을 자지 않은 채 신앙적 담화로 밤을 새우고 밝아 오는 아침 일찍이 눈물로 작별하였다”라고 묘사한다. 그렇게 토요일 밤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선교 120주년 특집 –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3)

 

그런데, 이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일화의 내용은 이렇다. 

날이 밝자 이민 인솔책임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주일예배를 위해 모든 노동이민자를 한 곳에 집합시켰다. 그러나 안식일 진리를 깨우치고, 침례를 받은 이응현과 손흥조는 “비성서적 일요예배에 참석할 수 없다”며 예배에 합류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예정된 하와이행 여객선에 오를 준비를 했다. 

인솔자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냈지만, 두 사람은 사과나 용서를 구하는 대신 “일요일이 참된 안식일이 아니므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계명의 참된 안식일은 제칠일”이라고 반박했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인솔자는 조선에서 선교 활동에 종사하다 휴양 차 미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잠시 고베에 체류하던 감리교 선교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토요일이 진정한 안식일이라고 고집하는 두 명에게 어떻게 대답하고 설득해야 하느냐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주장된 사실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해 줄 뿐 “토요일이 안식일이 되는 까닭은 아마도 미국과 일본의 밤낮 시간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기가 막혀 더 이상 질문도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온 그는 때마침 하와이 조선인 이민 사회에서 활동하다 귀국하던 친구 임형주(林衡柱)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도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듣기만 할 뿐 별다른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그가 바로 훗날 한국 재림교회 초기 선교에 큰 역할을 한 임기반이다. 


선교 120주년 특집 –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3)

 

출항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손흥조의 하와이 이민선 탑승이 거절된 것이다. 게다가 조선으로 귀환해야 한다는 지시까지 받게 됐다. 그가 왜 이 배에 오르지 못했는지는 사료에 따라 다르다. 누구는 서류 미비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100년사>는 “어떤 결격사항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결국, 손흥조는 어렵게 결행했던 하와이 이민 길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의외의 사태에 낙담이 됐지만, 고베에서 결심한 새로운 신앙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미래와 조선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신뢰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태에 순응했다. 

손흥조는 조선으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임형주와 가까워지게 됐다. 그리고 자신이 새로 믿게 된 재림교회의 진리를 소개하고, 그에게 쿠니야 목사를 만나 보도록 추천했다. 임형주는 이응현과 손흥조가 하와이로 떠나기로 했던 일요일 아침 안식일 신앙을 이유로 일요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일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안식일 교리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손흥조의 안내로 고베재림교회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임형주와 쿠니야 히데 전도사 사이의 신앙적 필담은 재림교회의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에 의한 정치 불간섭 신념에 이르러서 급격히 냉랭해졌다. 임형주는 “진정한 종교인은 정치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쿠니야 전도사의 가르침을 듣고, 재림신앙은 애국애족하는 조선인의 취할 종교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 더이상 쿠니야 전도사를 찾지 않았다. 아마도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던 임형주로서는 정치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쿠니야 전도사의 가르침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역시 같은 일본인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임형주는 손흥조와 귀국선에 동승해 여러 날을 함께하면서 안식일과 침례 등 재림교회의 새로운 교리를 계속 듣고 토론했다. 이 과정에서 재림교회 진리에 대해 새로운 관심과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선교 120주년 특집 – ‘복음의 시간을 거슬러’ (3)

 

해가 뉘엿뉘엿 지는 고베항 선착장 어귀에 서서 잠시 120년 전 그날을 상상해봤다.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던 손흥조의 마음이 어땠을까. 처음 일본땅에 발을 디딜 때의 고베항과 고국으로 돌아갈 때의 고베항은 그에게 아마도 전혀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처음 내릴 때는 육신의 삶을 위한 도전이었지만, 돌아갈 때는 영생의 소망을 품고 배에 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하와이 이민길이 막힌 것은 그에게 꿈이 좌절된 낙망이 아닌, 조선에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었을지 모른다. 자기 앞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모를 미지의 불안함이 깊었다면, 귀국길에는 자신이 깨달아 알게 된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간절함을 품게 됐을 것이다. 성경예언과 기별에 따라 일본은 곧 패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리라는 조국 광복의 기대도 품었을지 모를 일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이응현이 고베 시내의 긴 교회 간판을 무심히 지나쳤더라면, 쿠니야 전도사가 물끄러미 교회 간판을 바라보던 조선인 이민노동자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필담이 답답하다며 이응현이 성경공부를 도중에 중단했더라면, 아니, 그가 눈병에 걸리지 않고 예정대로 5월 19일 출항한 이민선 캡틱(Captic)호에 탔더라면, 그래서 손흥조와 만나지 못했더라면, 함께 교회에 가서 성경을 공부하자는 이응현의 제안을 손흥조가 거절했더라면, 그들의 인간적 계획과 바람대로 손흥조와 이응현 두 사람이 모두 하와이 이민길에 올랐더라면, 그리고 그즈음 임형주(훗날 임기반)가 고베에 있지 않았거나 손흥조와 함께 귀국선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혹여 그의 전도를 무시했더라면… 

본방인(자국민)에 의해 세 천사의 기별이 전해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재림교회의 선교역사는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체됐을지 모른다. 마치 톱니바퀴가 들어맞듯,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모든 과정이 과연 ‘섭리’라는 말 외에 달리 어떤 극적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이 기사는 참교육을 회복시키는 건강한 대학 삼육보건대학교 지원으로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