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 성령의 뜻인가 안 가는 것이 성령의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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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 21:4).

어느 것이?

바울은 성령이 자신에 대해 가는 곳마다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행 20:23) 자신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22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행 21:4, 11, 12).

어느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일까요? 예루살렘에 가는 것 혹은 안 가는 것?

바울의 결정

바울은 초지일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합니다. 일단 성령께서 양쪽 모두에서 결박과 환난을 예고하는 것이 동일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럴지라도 가고자 합니다. 제자들은 그러니까 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성경은 바울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성령의 감동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라고 하시지만, 동시에 우리는 바울을 아끼고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모습을 여기서 볼지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굳건한 마음으로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를 사도행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그의 선택의 결정의 근거는 ‘이 일이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박과 죽음이 앞에 있어도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것이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가기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바울이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 받아야 할 것을”(행 9:16) 주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에 제자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만류하기를 “그쳤”(행 21:14)습니다.

그렇습니다. 언뜻 상반된 여러 말씀이 주어질 때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에게 일관성 있게 주시는 사명이 중요합니다. 그 사역이 주님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주의 뜻을 이루는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럴 때 내가 아닌 주님의 인도하심을 결박과 환난 속에서 경험하게 되고 복음은 세상에서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 저희의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의 이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정하고 살고 죽게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