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드디어 가나안의 소산물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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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수 5:11).

가나안에서의 첫 유월절 식사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어떻게 점령할까 생각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월절 식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먹었습니다(11절). 유월절은 그들이 애굽을 떠난 날이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 유월절 식사를 한다는 말은 그들이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약속의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내리길 그쳤습니다(12절). 만나가 그쳤다는 것은 이제 그들이 다시는 광야로 갈 일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앞으로 그들은 가나안 땅,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계속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 주시면 안 되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도 만나를 계속 먹기를 바랐을지 생각해 봅니다.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고 얼마나 편했겠습니까? 예수님 당시에도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였을 때, 그들은 계속 그것을 먹기 바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되 한계를 두셨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만 두 번 그런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속 주시면 안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갈 때마다 홍해도 갈라지고, 요단강도 흐르기를 멈추고, 여행을 할 때 만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반석에서 물도 펑펑 쏟아져나오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애굽을 꼭 떠나야 했었나? 그냥 애굽을 점령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배계급이 되면 안 되었을까? 그런 다음 군사력을 키워 가나안 땅도 점령하면 약속의 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은… 노아는… 아담과 하와는….’

어느 순간 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가 아니라 제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세상의 주인이고 하나님은 제 꿈을 이루는 수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은혜로 주시는 기적이라는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상황을, 제가 일상적인 권한처럼 하나님께 요구하자, 저의 연약함과 죄됨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많아졌습니다. 이상하게도, 제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보다는, 저는 저를 닮은 신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아직도 애굽에 있고, 아직도 광야에 있는 저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 세상을 만들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나라를 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