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바울의 아덴 선교는 실패이었는가?

146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행 17:33, 34).

실패라는 주장의 근거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남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1, 2)라고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아덴에서의 실패를 교훈삼아 고린도에서는 바울이 십지가 중심의 기별을 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덴에서의 실패의 근거로 그곳에서는 회심자가 적었고 교회를 세우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 외에도 아덴에서는 기도 없이, 동역자 없이 사역을 하였기에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정말 실패이었는가?

그러나 사도행전 17장 22-31절에 이르는 긴 설교는 지금 돌아보아도 정말 아름다운 변증입니다. 인간은 죽기 때문에 현 세상을 즐기자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 학파와 인간의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진지한 우울을 사색하는 금욕주의자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바울은 우상숭배를 넘어선 신의 존재와 죽음을 넘어선 부활 그리고 심판을 반박 불가능할 정도로 능력 있게 전합니다. 실패한 기별의 예로 성경에 적어 놓았다고 말하기에는 압도적인 능력의 말씀입니다.

마게도냐의 호소는 성공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로 와서 도와달라는 환상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환대보다는 핍박이었습니다. 아덴에서의 조롱과 적은 수확도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는 십자가 중심의 기별을 전해 아덴보다 많은 영혼을 수확하였지만 생애의 변화 없이 분파가 나뉘고 잘난 체하는 교인들로 인해 낙담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계속 경험을 쌓아가며 성장합니다. 바울은 결국 2차 선교여행의 여러 상황을 분석하며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완벽한 하나의 모델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회론(에베소서)이 탄생합니다.

우리는 성공과 실패를 속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배워가며 성령을 의지하여 사역할 뿐입니다. 어느 때는 성공에 기뻐하고 실패에 힘들어하지만 주님을 의지함으로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장하며 우리 생각을 넘어서는 주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하소서. 그저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역하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