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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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창 20:1-2)

아브라함이 아흔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헤브론의 마므레를 떠나 네게브 땅 그랄로 갑니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어디로 간들 어디에 머문들 백 살이 다 된 믿음의 조상의 믿음이 흔들릴 리가 있을까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랄 땅으로 간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니 말입니다. 비록 이복이긴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누이이기도 했으니 누이라 한다 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그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말만 믿고 사라를 궁으로 데려간 그랄 왕 아비멜렉은 그날 밤 하나님께 혼쭐이 납니다. 사색이 된 아비멜렉은 날이 새자마자 사라를 돌려보내며 아브라함을 호되게 책망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렇게 답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창 20:11-12). 아내 사라가 절세의 미인인지라 사람들이 사라를 탐하여 남편인 자신을 죽일까 봐 그랬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사라를 아내라 하면 그 미모에 혹해 사라를 탐하는 자들이 남편인 자기를 죽이고 사라를 덮칠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를 자기의 누이라 하면 사라를 탐하는 자들이 사라를 덮칠지라도 오라비인 자기를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제 한 목숨 살겠다고 아내를 버리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의 남편도 제 목숨 살겠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이렇게 비열하게 버리지는 않을 터인데, 그 짓을 지금 믿음의 조상이라는 자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지금 아내 사라만 버린 게 아닙니다. 사실은 하나님도 버린 것입니다. 살속에 영원한 언약을 새겨 주신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신뢰한다면, 제 목숨이 염려되어 아내 사라를 누이라 했을 리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자가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를 못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언약의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번 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십사 년전 일흔 다섯 살일 때도 그랬
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했던 바로 그 짓을 아흔아홉 살의 믿음의 조상이 창세기 20장에서 다시 또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랑 그렇게도 똑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그런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도대체 그 끝이 어디일까요?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