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욥 35:7).
무가치한 우리의 의
엘리후는 욥과 그의 세 친구의 주장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런데 세 친구가 욥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기에 그의 발언은 주로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욥 32:2)라는 욥의 주장을 반론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그대는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대보다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보라”(욥 35:5)라고 말합니다. 높이 뜬 구름이 욥과 아무 상관 없이 떠 있는 것처럼 욥이 범죄를 해도 하나님께 아무 영향이 없으며 욥이 의로워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그는 말합니다(6, 7절).
엘리후의 주장처럼, 우리 인간들은 우리 삶의 의로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워도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의 기준에 우리의 삶이 도달하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누구도 자기 삶이나 의를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선이나 열심, 헌신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욥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으며 의롭게 살아왔기에 하나님께 욥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욥이나 우리의 의는 하나님에게 무엇을 요구할 근거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가치 있는 우리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기 1, 2장에서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9; 2:3)라며 사탄에게 자랑하셨습니다. 이렇게, 욥기는 하나님께서 욥을 귀하고 가치 있게 보신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화목제물 곧 속죄물로 보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요일 4:1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로 인해서 우리를 가치 있게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에게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에게 우리의 의는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에게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기도) 저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더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