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루시퍼의 자만심과 교만이 그를 죄의 길로 이끈 근본 원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두드러진 주제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살렘, 시온 산, 예루살렘, 그리고 새 예루살렘 같은 단어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이고, 그에 대비되는 다른 하나는 바벨, 바벨론으로 부르는 사탄의 영역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차례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서 당신을 섬기도록 바벨론에서 그들을 불러내셨다.
예를 들어, 아브람(훗날 아브라함으로 개명됨)은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다(창 11:31~12:9). 유대인들은 오랜 포로 생활 끝에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스 2장).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침내 시온 산과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위해 마지막 때의 바벨론으로부터 불러냄을 받는다(계 14:1, 21:1~3, 10).
이사야 14:12~15을 읽어보라. 루시퍼가 하늘에 있을 때 품었던 자만심이 온 우주와 이 세상에 어떤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가?
성경에서 바벨론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세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바벨론의 왕은 자만과 교만의 상징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바벨론은 연속적인 제국의 등장을 나타내는 큰 신상에서 금으로 된 머리일 뿐임을 보여주셨다(단 2:37, 38). 하지만 왕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여 자신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상징으로서 신상 전체를 금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상에 절하게 했다(단 3장). 두로 왕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겔 28:12~19), 바벨론의 왕 또한 루시퍼의 상징이 되었다.
이사야 14:3~11은 바벨론의 거만하고 강압적인 왕의 몰락을 묘사한다. 이어서 이사야 14:12~15은 역사의 한 지점에서 하늘 궁정으로 장소를 옮겨 이와 비슷한 자만심과 교만심이 루시퍼의 타락을 불러온 이유였음을 강조한다.
<묵상>
우리의 지위나 업적을 가지고 자만하거나 자랑하기가 쉬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항상 우리 앞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이와 같은 실수를 피하는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이어서) 성경 본문은 루시퍼가 자신의 보좌를 하늘에 있는 다른 모든 존재들 보다 높은 곳에 두어 자신을 “지극히 높은 자”(사 14:14)와 같이 만들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타적인 사랑과 협력이 루시퍼의 이기심과 경쟁심에 의해 도전받는 새롭고 적대적인 상황의 시작이었다. 원수는 자기를 높여 하나님께 도전하고 다른 천사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주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악이 존재하게 된 기원이다.
<교훈>
성경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루시퍼의 자만심과 교만이 그를 죄의 길로 이끈 근본 원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적용>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우리가 날마다 해야하는 영적 훈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타락의 기원이 된 교만과 야망 – “루시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불평하게 하고 하늘에 확립되어 있는 질서를 전복하려고 기도케 한 것은 그의 교만과 야망이었다. 타락한 이후에 루시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기와 같은 시기와 불만의 정신과 지위와 명예에 대한 야망을 불어 넣는 것을 그의 목적으로 삼아왔다”(부조와 선지자, 403)
<기도>
하나님의 자리를 탐했던 루시퍼의 욕심과 이기심이 완벽했던 우주에 죄가 들어오게 된 이유였습니다. 저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굳건히 함으로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