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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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창 22:8-9)

아버지도 말이 없고 아들도 말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산을 오를 뿐입니다. 그 무거운 침묵을… 마침내 아들이 깹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사랑하는 아들의 그 질문이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 들어 심장을 찌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늙은 아버지는 가던 길을 멈춥니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번제에 쓸 나무를 짊어진 사랑하는 아들에게 입을 열어 대답을 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늙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 말에 복음의 고갱이가 다 들어 있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진실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입니다. 번제할 어린 양을 준비하는 이는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시니,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엡 2:8)인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준비한 ‘번제할 어린 양’에 있지 않음을 행여라도 잊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진실로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무엇을 하려고 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이 이렇게 아무리 말씀을 하시고 또 말씀하셔도 자꾸만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천년 전 신실한 그 율법교사처럼 하나님께 이렇게 질문을 하곤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경건하고 신실한 율법교사가 주님께 이렇게 질문을 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또 왜 자꾸만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복음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오해 없이 복음을 알았다 해도 그 복음을 마음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시는데도, 자꾸만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고, 조석으로 경건하게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충성스럽게 드리고… 말씀을 암송하고, 예언을 연구하고…. 제가 바로 그랬었습니다. 복음을 오해하고 있었을 그때, 정말로 꼭 그랬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하나님께 드릴 ‘번제할 어린 양’을 신실함과 경건함과 열심과 헌신으로 준비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제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을 알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알고 보니,하나님은 진실로 사랑이십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아멘….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