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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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창 22:4-5)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깊고 견고한지가 아브라함의 이 말에 모두 들어 있는 것같습니다. 슬픈 아버지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아들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 산을 오르면서 산 아래 남겨 둔 종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종들을 속이려고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명령을 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는 알지 못하나 아브라함이 확실하게 아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시니 맹세로 언약하신 그 영원한 언약을 말씀하신 그대로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실 것입니다. 미쁘신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언약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리고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제 아브라함은 흔들림 없이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창 22:7)도 없이 아들 이삭과 단 둘이서 산에 오르면서도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확신에 차 말을 하는 것입니다. 번제를 마치고 이삭과 함께 돌아오게 될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믿는 것이지요.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8-19).
그 확신, 그 믿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그 원천은 바로 ‘앎’(벧후 1:2)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 1:2-3). 알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4)하는 이 말씀은 사흘 길을 걸은 아브라함이 멀리 서서 모리아산을 바라보았다는 뜻이기도 하겠으나, 믿음의 조상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산을 바라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왜 그런 명령을 하셨는지 이해하지는 못하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니 믿음의 눈으로 그 산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모리아산 꼭대기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숫양’(창 22:13)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오늘 우리에게도 그 앎과 그 믿음을 주시옵소서.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