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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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수 5:1).

할례 없는 자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특히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심으로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바로 그들을 공격하기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게 하십니다.

할례는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외적 증표입니다. “할례 없는 자”라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들어갔지만 깨진 사람을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할례 없는 자라는 말은 커다란 수치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할례받지 않은 자”라고 말하면서(삼상 17:26, 36), 어떻게 할례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할례받지 않은 자에게 전쟁에서 질 수 있냐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수치스러운 모습이 이스라엘 전체의 현 상황이었습니다. 약속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왔는데, 정작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증표가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쳐서 점령하는 것보다 할례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보다 더 중요한 일

교회의 사명은 선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남은 교회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것입니다(계 12:17). 그런 자들이 마지막 시대의 선교 사명인 세천사의 기별을 전할 수 있습니다(계 14:613). 교회다운 교회가 선교할 수 있습니다. 교회다운 교회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가장 중요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순종하는 교회는 당연히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능력 안에 있을 때, 순종도 가능하고 선교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의 마음을 녹이고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신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