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죽으시고 묻히시고 살아나시고 보이셨다. 예수께서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모든 일은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마가복음 16:1~8과 고린도전서 15: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부활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에 등장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제시하지만, 모두 고린도전서 15:1~8에 기록된 핵심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죽으시고, 묻히고, 살아나시고, 보이심이라는 네 가지 개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마가복음에서 죽으시고, 묻히심은 15장에 나타난다, 16장은 살아나시고, 보이심을 나타내며 특별한 기록을 더한다. 마가복음 16:7은 갈릴리에서의 회합에 대해 말하며, 그곳에서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요 21장 참조).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실제적이며 합리적이다.
우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기만 한다면 부활과 기적에 대한 생각은 합리적인 것이 된다.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도 분명히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인이시기에 부활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다음으로, 무덤은 분명 비어 있었다. 무신론자 역사가들조차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분의 시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부활에 대한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는 주장 또한 개연성이 없다. 제자들은 경비병들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경비병을 통과해서 시신을 훔쳤다고 한다면 왜 아무도 시체를 훔친 혐의로 체포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도 제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매우 강력한 원수였던 바울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바울의 삶의 전 궤도를 완전하게 뒤집어 놓았다고 말한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다른 이유가 더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한 논거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운 기독교 교회의 발흥이다. 부활이 거짓이라면 초기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왜 이를 알면서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는가? 주님이 돌아가신 직후(행 3:15), 그리고 수년 후(벧전 1:3)에도 일관된 그들의 증언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교훈> 그분은 죽으시고 묻히시고 살아나시고 보이셨다. 예수께서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모든 일은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묵상>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부활이 얼마나 실제적인 일로 생각됩니까?
<적용> 누군가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어떤 증거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그들은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셨고 우리도 그분과 같이 일어났다고 선포했다. 그리하여 부활의 성스러운 진리가 불멸의 것이 되었다. 부활한 성도들은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라는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였다. 그들의 부활은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라는 예언의 성취에 대한 한 예증이었다”(시대의 소망, 786).
<기도>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습니다. 누구도 열 수 없는 문을 열어주신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시며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새 길을 여시고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진리를 언제나 기억하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