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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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무려 이십오 년이나 기다린 끝에 백세에야 얻은 귀하고 귀한 독자입니다. 그 아들을 기도와 말씀과 눈물로 키워 이제 스물, 푸른 나무 같은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바치라 하십니다. 그것도 그냥 바치는 게아니라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라 하십니다. 백세에 얻은 언약의 아들, 사랑하는 독자를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으니 백이십세의 늙은 아버지는 참으로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슬픈 아버지 아브라함은 밤 하늘을 우러러 그 말씀이 정말인지 하나님께 여쭙고 또 여쭙습니다. 아무리 여쭈어도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니 하나님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는 이제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동이 트자마자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독자와 모리아 산을 말없이 함께 오르는 것입니다.
아들에게는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아버지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6). 말씀을 그저 읽기만 해도 슬픔이 밀려와 목이 메이는데,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산을 오르는 늙은 아버지 아브라함은 그 마음이 도대체 얼마나 슬펐을까요?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아버지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독자를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슬프고 슬픈 아버지가 여기 또 있습니다. 그 아들도 ‘독자’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 3:17)입니다. 바로 그 아들을 불에 태워 번제로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슬픈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슬픈 아버지 하늘의 하나님은 슬픈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사랑하는 독자 곧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를 번제로 드리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니 ‘하나님의 그 요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늘 아버지도 그러셔야만 합니다. ‘사랑’이 하나님에게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 요구를 하니, 하나님은 ‘사랑의 그 요구’를 들으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아, 슬픈 아버지, 슬픈
사랑이여…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