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시 3:2).
많은
표제어는 본 시편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다윗은 1, 2절에서 “많은”을 세 번이나 사용하며 자신의 대적이 많다고 말합니다. 다윗 왕은 자신이 다스렸던 이스라엘 거의 전체가 그를 적대시하며 “그[다윗]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2절)라고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반역의 원인이 자신과 밧세바와의 불륜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던 다윗은 이런 말을 들으면서 가슴 터질 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자기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린 듯 보이고, 하나님도 그를 버린 듯 보입니다.
우리는 욥처럼 의로운 가운데 고난을 받기보다는 다윗처럼 자기 잘못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죄 지었음을 알고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윗은 죄를 부정하는 대신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분은 성산에서 응답하셨습니다(4절). 성산은 바로 이전 시편인 2편 6절의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와 연관을 가집니다. 지상에 세워진 거룩한 산 시온은 다윗 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알다시피 시편 2편은 메시아 시편입니다. 그러므로 시온은 갈바리 언덕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시편 2편 7절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는 구절입니다(행 13:33). 이렇게 주님은 자기 죄로 인해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주시며 구원의 길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시 3:7)라고 간구합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성막을 따라 움직일 때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성막이 움직이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일어났습니다. 나아가, 다윗은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8절)라고 말하며 자기의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까지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어떠함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으며 하늘 성소에서 일어나 중보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지금 우리 죄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지금 구원의 복을 내리고 계십니다.
기도) 오늘 우리 죄를 대속하신 주님께 부르짖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