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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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1-2)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창 21:33-34). ‘광야’에 살면서도 이스마엘은 슬프게도 애굽과 섞여 버리고 맙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의 땅’(창 21:34)에 살면서도 블레셋에 전혀 섞이지 아니합니다. 머무는 곳 그 곳이 어디이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 아브라함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우셨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주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려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22장의 내용입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22:1).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아브라함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우리는 압니다. 백 세에 얻은 아들을 제 손으로 죽여 불에 태워 번제로 드려야 했으니,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주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려 하신다’는 말에 의아함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는 명령,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이 명령이 어떻게 은혜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베푸신 정말로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 일을 통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 몸보다 더 사랑하는 아들을 둘로 쪼개셔야만 하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아브라함은 온 몸으로 절절히 경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모르듯 아브라함도 정학하게는 몰랐습니다. 우릴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에 대해 듣고 읽고 보고 배워 알기는 알지만 복음의 그 뜻과 깊이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것처럼 아브라함도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으로 특별히 부르십니다. 거기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심장을 손수 열어 보여 주시려 하시는 것입니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하나님의 심장을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을 보고 복음의 실체를 알게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에 절규를 합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그 사랑에 절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