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화요일 장년 교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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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말과 조롱은 역설적 진리를 나타낸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겪으셨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다.

마가복음 15:21~38을 읽어 보라. 어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역설이 나타나는가?

수난 이야기의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계획한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말없는 희생양이다. 체포되시기 전까지 복음서 전체에서 그분은 활동을 주도하는 분이셨지만 이제 끌려 다니신다. 건장한 순회 설교자였던 그분이 매 맞고 먹지도, 자지도 못해서 이방인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 할 만큼 기진하셨다.
십자가에서 그분의 옷은 벗겨지고 군인들은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될 것인지 제비를 뽑아 정했다(시 22:18). 십자가 형벌은 거의 피를 흘리지 않는 처형 방식이었다. 십자가에 사람을 고정하는 목적으로 사용된 못(요 20:24~29)은 주요 혈관이 없는 손바닥 아래 손목에 박혔을 것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손”은 손과 팔뚝을 모두 의미할 수 있다. 손바닥은 구조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팔뚝 한 가운데를 지나는 정중 신경이 못에 짓눌리면 팔에 극심한 통증을 일으킨다. 숨쉬기가 어렵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은 못 박힌 발을 밀어 올리고 팔을 구부려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이것은 다시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이런 식으로 십자가에서 탈진 질식사에 이르는 경우도 많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엄청난 조롱과 굴욕을 받으셨다.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것처럼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는 계시/비밀 주제가 나타난다. 그래서 “주님,” “하나님의 아들” 또는 “그리스도”와 같은 기독론적 칭호는 지금까지 자주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에서 바뀐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더 이상 숨겨질 수 없으며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이 칭호를 사용하는 점은 더욱 역설적이다. 이들은 얼마나 자신의 말로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는가!
그들의 조롱하는 말 중 하나가 두드러진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31).

(이어서) 십자가에서 그분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 그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을 도우셨다고 말한다. 이 헬라어 동사는 “구원하다,” “치유하다,” “구출하다”로 사용될 수 있다. 그들은 이 말로 그분이 구세주이심을 역설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역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분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거나 구원하지 않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교훈> 유대인들의 말과 조롱은 역설적 진리를 나타낸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극도의 고통과 수치를 겪으셨지만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다.

<묵상> 요한복음 1:1~3절을 읽어 보십시오. 이 구절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이 구절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마가복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이유 – “고통 속에서 죽어가시던 예수께서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외치는 제사장들의 말을 다 들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시대의 소망, 749).

<기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가슴 아픈 사실이지만 겸손하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며 고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받지 않게 도와주시고 가슴에 깊이 간직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