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수요일 장년 교과] 마음의 평안이 없는 화가 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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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요나가 인간적인 부족함을 드러내 보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인내로 그에게 다가오셔서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돌이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안타깝게도 요나의 이야기는 3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욘 4:1~11을 읽어 보라. 요나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의 불완전한 성품에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요나 4장은 자신의 선교 사역이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 화를 내고 있는 요나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요나는 자기가 바보처럼 보이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는 당신의 선지자와 대화하시며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선지자와 같은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성장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극복해야 할 약점이 있음을 보게 된다.
“요나는 그 도시가 악함에도 불구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게 하심으로 그 성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을 때에 제일 먼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인해 기뻐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거짓 선지자로 여김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의 평판에 눈이 멀어 그는 그 불쌍한 도시에 있는 영혼들의 무한히 큰 가치를 보지 못했다”(선지자와 왕, 271).
당신의 선지자를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신 듯 보였다. 요나가 도망쳤을 때는 그를 다시 돌이키시기 위하여 폭풍과 물고기를 보내셨다. 이번에도 그가 잘못 행동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함께 대화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 4:4).

눅 9:51~56을 읽어 보라. 여기에 나오는 경우와 요나의 이야기에서 생긴 일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묵상>
하나님의 심판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운 것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이런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동기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분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겠는가?

<교훈>
비록 요나가 인간적인 부족함을 드러내 보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인내로 그에게 다가오셔서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고 돌이키기 위해 노력하셨다.

<적용>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 “요나는 어쩔 줄을 몰랐고 면목이 없었다. 그는 니느웨를 아끼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성읍을 경고하여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였다. 비록 예언한 사건은 성취되지 않았을지라도 경고의 기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을 성취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은 이방인 중에 나타났다”(선지자와 왕, 272).

<기도>
저의 연약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셔서 말씀해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끝까지 애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포기하지 않고 저의 구원을 위해 애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순종으로 반응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