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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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창 21:1-2)

아브라함은 혼자 몸이 아닙니다. 천 여명이 넘는 큰 무리의 족장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기 땅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하셨지만 자기 땅은 아직 단 한 평도 없습니다. 결국 남의 땅에 머물러야 하니 분쟁과 전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분쟁을 피하려면 그 땅의 왕들과 화친을 해야만 했습니다. 왕들도 아브라함을 무시할 수가 없었으니 그들로서도 화친이 필요했습니다. 화친을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선물을 주고 받으며 화친을 맺기도 하고 조공을 바쳐서 화친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흔히 쓰이던 화친의 방법 중 하나는 혼인이었습니다. 화친을 위해 정략적으로 혼인을 맺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혹시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화친을 위해 아내 사라를 ‘내 누이’라 하면서 정략결혼을 시도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브라함은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 샤다이 하나님을 믿지를 못하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화친을 이루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번 한 번만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창 20:13) 그 짓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 하는 아브라함의 민낯입니다. 도저히 믿음의 조상이라 부를 수가 없는 부끄럽고 수치스런 민낯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마침내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시고야 마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이 바로 창세기 21장의 이 말씀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창 21:1-2)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나 신실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하든지, 사라의 신실함이 어떠하든지,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요 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전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신실치 못한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도 하나님께 신실하기를 소원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께….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