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욥의 말이 그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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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욥 31:40).

욥의 마지막 하소연

욥기 31장은 3장부터 이어온 세 친구와의 논쟁의 마지막 장이자, 29장부터 세 장에 걸쳐 나오는 욥의 독백의 마지막 장입니다. 29장에서 욥은 지난 세월의 형통했을 때를 회상하며, 회복을 소망합니다. 30장에서는 고난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현재의 처절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31장에서는 친구들의 정죄에 대해서, 욥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려고 했었는지를 하소연합니다. 31장 1-12절은 윤리적으로, 13-23절은 사회적으로, 24-40절은 신앙적으로 정결하게 살려고 했었던 것을 고백합니다. 이 이후에 욥의 말은 엘리후의 말과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 외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의 하소연은 생생하고 절절합니다. 자신의 눈과 발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말합니다. 신분이 다른 종들을 자신과 똑같이 하나님과 만드신 피조물이라고 인정하며 돌보았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위엄을 알기에 고아와 과부를 가족처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욥이 세 친구와 이야기하며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입니다.

욥이 정말 바란 것?

긴 논쟁과 독백에서 욥이 정말로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요? 친구들의 주장이 잘못되었고 자신의 주장이 맞음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런데, 욥이 친구들과의 논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또 그냥 친구들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욥이 실이익을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긴 논쟁을 하며 버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반복해서 본 것처럼, 욥이 친구들에게 바랐던 것은 바로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미 친구들의 위로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긴 독백을 이어갑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원하노라”(35절). 욥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속 역사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일해주시기를 욥은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까닭 없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실 분이 아닌 것을 믿으며,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일하시는 모습 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기도) 저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