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하나님께 따지고 싶어 하는 욥
욥은 자기가 받은 재앙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항하며 따지려고 그분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2-3절). 그러나 욥이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8절).
욥은 자신이 하나님과 변론하기만 하면 심판자의 정죄함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자신합니다.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7절). 10절의 내용도 7절과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10절을 단련의 과정으로 이해해서, 욥이 이 시련을 통과하면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번역은 “하나님은 내가 발 한 번 옮기는 것을 다 알고 계실 터이니, 나를 시험해 보시면 내게 흠이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련만!”(욥 23:10, 표준새번역)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이것이 원어적 의미 혹은 욥기 23장과 욥기 전체의 문맥과도 일치합니다.
욥은 하나님을 만나 따져보면 자신의 의로움이 드러날 것이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의 진정한 마음과 행위를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절한 호소에 대해, 인간 주제에 어떻게 하나님께 따질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은 욥의 간절한 마음을 몰라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
욥은 지금, 자신이 의롭다고 잘난 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잘못이 없는데 고난받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욥기 1, 2장의 사건을 욥에게 알려주었다면 욥의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알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의 의문이 해소되면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겨나는 것이 우리의 습성임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실제로 문제의 해결은 주님을 만나 따지는 데에 있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길 때, 그 이유를 모르면서도 주님을 의지하려면, 평소에 주님과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욥이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도) 주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새롭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