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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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창 16:15-16)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창 16:2). 우리네 믿음이란 게 꼭 그렇습니다. 오늘은 불꽃 같이 뜨겁다가도 내일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갑지도 아니하여 토하여 내칠 만큼 뜨뜻미지근 하기도 한 게 믿는다 하는 우리네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 3:15-16).
그러니 ‘아브람의 의’와 ‘사래의 의’ 그리고 오늘 ‘우리의 의’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만약 ‘우리의 의’가 ‘우리의 믿음’ 때문이라면 우리에겐 아무런 소망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믿음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결코 의롭게 설 수가 없고, 그 믿음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여기심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게 그러한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의롭게 여기심은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우리의 믿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미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미쁘신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뜨겁든 차갑든 뜨뜻미지근하든 미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딤후 2:13)나니, 그래서 그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복음이요 ‘신실하신 하나님’이 복음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딤후 2:13)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육십육권은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미쁘신 복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몇일 전부터 읽고 있는 창세기 15장과 16장과 17장에는 우릴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눈물나게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