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목요일 장년 교과] 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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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수직적 용서”를 “수평적 용서”로 적용하는 언어생활을 제시했다. 분노의 말은 잘 사용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구원의 날”(엡 4:30)을 언급함으로써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의 맥락에서 언어 사용에 관하여 주의를 촉구한다. 그러므로 엡 4:31, 32은 그 위대한 사건에 참여할 자의 언어 사용에 대해 권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서 우리는 말과 관련된 어떤 태도와 행동을 버려야 하고, 어떤 모습과 행동을 받아들여야 하는가?(엡 4:31, 32)

엡 4:17~32의 마지막 권면에서 바울은 다시 부정 명령, 즉 버려야 할 여섯 가지 악(엡 4:31)과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용서하라는 긍정 명령(엡 4:32), 그리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엡 4:32) 서로 용서해야 한다. 여섯 가지 악의 목록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용어인 “모든 악독”으로 시작해서 “모든 악의”로 끝난다. 그 사이에 네 가지 악 “노함,” “분냄,” “소란,” “비방”(엡 4:31)이 언급된다.
이 중 마지막 단어는 헬라어 “블레스피미아”(blasphemia)를 번역한 것으로, 영어에서는 “신성 모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정됐다. 그러나 헬라어는 이를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비방” 또는 “악한 말”로 사용한다. 이 목록은 마음가짐(악독, 노함, 분냄)이 분노의 말(소란, 비방)로 끓어넘치는 것을 보여준다. 본질적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말을 무장해제 시키려고 한다. 분노의 말을 유발하는 마음과 그것을 사용하는 수사학적 전략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내버린 곳에서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번성하고 교회의 연합이 이루어질 것이다(엡 4:1~16 비교).
악한 말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이다.

(이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인(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까지) 우리의 대화와 행동은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최고 기준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엡 4:32)에 근거한 친절과 온유함, 용서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바울은 “수직적 용서”(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용서)를 “수평적 용서”(우리가 서로에게 베푸는 용서, 골 3:13, 마 6:12, 14, 15 비교)의 본보기로 제시한다.

<교훈> 바울은 “수직적 용서”를 “수평적 용서”로 적용하는 언어생활을 제시했다. 분노의 말은 잘 사용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말로 대체되어야 한다.

<묵상> 그대가 사용하는 말의 힘에 대해 권면한 내용들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어떻게 하면 서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며 믿음을 키우는 데 그대의 말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모든 행동은 선악 간에 열매 맺는 씨가 됨 – “뿌려진 씨는 수확을 내고 그것은 다시 뿌려져서 수확은 점점 불어나게 된다. 이 법칙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모든 행동과 모든 말은 열매를 맺는 씨가 된다. 모든 친절한 행동과 순종과 극기는 다른 사람에게서 재생산되고 그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람에게 뿌려진다. 이와 같이 질투와 증오와 불화 따위의 행동도 ‘쓴 뿌리’(히 12:15)를 나게 하는 씨가 되어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더럽힘을 받게 된다.”(실물 교훈, 85)

<기도>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은혜가 충만함에도 그 은혜를 나타내는 데에 부족한 제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의 언어생활과 삶에서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삶과 신앙이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