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반복되는 막말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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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욥 15:7).

대화가 안 되는 이유 1

엘리바스가 두 번째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욥이 한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표가 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이 말한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그의 말을 그저 헛된 지식, 무익한 말로 깎아내렸습니다(2, 3절).

욥의 친구들처럼, 우리 편이 다수이고 다수라는 힘으로 상대를 압도할 때, 우리는 논리보다는 힘으로 상황을 주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유리한 상황이 뒤집히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 우리는 선선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필요하고, 성경의 중요한 진리인 조사심판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화가 안 되는 이유 2

이제 엘리바스는 욥이 말한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을 트집 잡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제일 먼저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네가 들었느냐?”(7, 8절). 이런 표현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신적 존재를 말하기 위해 사용된 언급입니다. 다시 말해, 엘리바스는 “욥, 네가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거냐? 그러면 네가 하나님이냐?”라고 비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같은 네가 어떻게 이런 모습일 수 있지?”라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런 비웃음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런 태도로 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졌습니다.

“우리 중에는 머리가 흰 사람도 있고 연로한 사람도 있고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느니라”(10절). 이 말은 “너 나이가 어떻게 되냐? 어린 것이 ‘알겠습니다’ 하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고” 정도가 되겠습니다.

“어찌하여 네 마음에 불만스러워하며 네 눈을 번뜩거리며 네 영이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리며 네 입을 놀리느냐”(12, 13절). 이것은 “네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말하는 모습을 보니 너는 기본적으로 태도 자체가 문제야”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엘리바스는 지금 욥의 아픔에 공감하기보다는 욥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대드는 모습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욥을 위로하고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보다는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욥에 대해 자존심이 상해 빈정거리고 있습니다. 친구의 아픔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중요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아파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