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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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욥 14:14, 15).

인생은 짧고 걱정은 가득하다

인생은 짧고 걱정은 가득하다는 욥의 말은 인생을 정리하는 촌철살인의 표현입니다. 꽃이 시들고 그림자가 지나가듯이 인생도 눈여겨볼 새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이렇게 짧은 인생인데도 그 사는 날들이 더러워서 깨끗한 것을 낼 수 없으며, 살아갈 날도 정해져 있어서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합니다(1-5절). 욥은 이처럼 인생의 허망함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허망함을 알면 알수록 더 나은 삶을 갈망합니다. 욥은 찍힌 나무에서 다시 움이 나고 늙은 뿌리에서 다시 가지가 새롭게 뻗어 나오는 것에서 희망을 찾아냅니다(7-9절).

희망의 기다림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욥은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14, 15절)라고 말합니다.

욥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나지는 않으리라는 소망을 피력합니다. 이 고난의 날을 참으면 주의 손이 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아는 하나님은 욥의 걸음을 세고, 욥의 허물을 주님의 주머니에 봉하고, 욥의 죄악을 싸매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희망을 끊으심

그런데 욥은 안타깝게도 12-14장에 이르는 자신의 길고 긴 고백을 절망으로 마칩니다.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그의 살이 아프고 그의 영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19, 22절). 우리는 여기서 욥의 감정의 굴곡이 엄청나게 요동치는 모습을 확인합니다. 힘들지만 믿음의 말을 계속 이어왔던 욥은, 세 번째 친구에 대한 긴 대답의 말미에 왜 갑자기 희망이 끊어졌다고 말한 것일까요?

욥은 한 차례씩 돌아가며 막말을 퍼부은 세 친구로부터, 다음번에는 이 낙망에서 벗어날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의 두 번째 말들에서는 친구들이 정죄가 아닌 위로의 말을 해주길 간절히 소망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절망했다면 욥은 친구들을 상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을 위로할 친구들은 바로 그 사람들이었기에 또다시 애처롭게 세 친구와 문답을 이어갑니다.

기도) 위로받고 위로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제 주변에 가득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