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 맹인을 두 번 만져서 고치신 것이 아니다. 이는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시간이 걸림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비유이다.
마가복음 8:22~3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기 위해 두 번 만지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며,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많은 시각 장애인을 치료해 주셨다. 마가복음 8장의 이야기 외에 마가복음 10:46~52에는 맹인 바디매오를 치유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두 명의 맹인을 이야기하고(마 20:29~34), 요한복음 9장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예수께서 실로암에서 씻어 고치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마가복음 8장의 이야기는 독특하다. 이것은 마가만 기록하고 있으며, 온전하게 회복하게 만들기 위해 예수께서 두 번 행동 하셔야 했던 유일한 기적이다. 그중에서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인도하시는 세심한 장면은 감동적이며 그의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동정심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두 번 만지셔야 했는가? 다른 모든 기적에서는 단번에 치유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영적 통찰력이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시간이 걸리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비유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마가복음 8:22~10:52은 맹인을 고치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맹인의 치유로 끝난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특히 제자들에게 다가올 당신의 죽음에 대해 가르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야기 속의 맹인처럼 그들도 분명하게 보기 위해 두 번째 손길이 필요하다. 그의 경험은 예수님의 길을 밝히 볼 때까지 겪는 제자도의 경험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훌륭한 선생은 질문만으로도 학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마가복음 8장의 이 부분은 이 책의 전환점이다. 세 가지 특징이 이것을 보여준다. 첫째, 예수님은 이 시점 이전에는 하지 않으셨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제자들에게 질문하신다. 둘째, 귀신 들린 사람이 아닌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선언한다.
(이어서) 셋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가 드러난 직후에 그분은 당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계신지, 즉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마음을 꺾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메시아’라는 말은 로마의 통치를 전복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종류의 메시아가 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침묵을 요구하셨다.
<교훈>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 맹인을 두 번 만져서 고치신 것이 아니다. 이는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시간이 걸림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비유이다.
<묵상> 이야기 속 맹인과 우리의 모습은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맹인을 대하시는 자비로운 모습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이 이야기는 어떤 일이 아무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말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는 것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영감의 교훈>
영적인 빛을 거절하지 말라 – “눈이 멀고 마음이 강퍅하여지는 것은 이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흔히 그 과정은 점진적이요 거의 알아챌 수 없다.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한 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할 때에 영적 감각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서 두 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암흑은 깊어지고 마침내 영혼이 밤과 같이 어두워진다”(시대의 소망, 322).
<기도> 저희는 깨닫는 것이 더디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도 바르게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부족한 깨달음과 더디 보는 악한 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고 마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