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일요일 장년 교과] 예상치 못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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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 4:12).

고통과 시련은 예기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길 반대편 차가 차선을 넘어오거나, 해고 통지를 받거나, 전혀 짐작도 못했던 진단 결과를 듣거나, 가까운 사람이 배신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들지만, 이런 고통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더욱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이번 주에 우리는 고통을 가져오는 몇 가지 구체적인 상황이나 시련의 형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먼저 오늘의 본문인 베드로전서 4:12을 살펴보자. 여기에 나오는 ‘이상한 일’은 헬라어로 ‘낯선 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인 경험에서 불 시험 당하는 것을 낯선 것으로 믿게 하려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오히려 그러한 일들을 예상할 수 있는 정상적인 일로 여기라고 말한다.
‘불같은 시련’ 또는 ‘불시험’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불사르다, 태우다’라는 뜻이다. 같은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용광로’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위한 이 고난의 경험은 ‘제련의 과정,’ 곧 ‘시련을 통해 정금으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베드로전서 4:12~19을 읽어보라. 베드로가 전하고자 하는 기별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너무 단순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이상한 일로 여긴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편과 악한 사단의 편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너무나 쉽게 좋은 것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나쁜 것은 모두 사단에게 속한 것으로 분류해 버린다.

<묵상>
고통스러운 시험을 당하고 있는 친구에게 베드로전서 4:12~19의 말씀을 통해 그 시험으로 인해 놀랄 필요가 없음을 어떻게 지혜롭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이어서) 그러나 삶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느낌만으로 어느 것이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어느 것은 사단에게 속하였는지 결정할 수 없다. 때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고, 사단을 따르는 것이 커다란 보상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욥은 고난을 받으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욥 21:7).

<교훈>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는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용>
시련이 닥칠 때 그것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고난의 풀무에서 당신의 종들을 정련하심 – “하나님께서는 항상 고난의 풀무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하셨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순금에서 찌꺼기가 제거되는 것은 풀무의 열을 통해서이다.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주목하신다. 그분께서는 그것이 당신의 사랑의 광채를 반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 품성의 귀금속을 정련하기 위하여 필요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세밀하고 엄격한 시험으로써 당신의 종들을 훈련하신다”(부조와 선지자, 129).

<기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항상 장밋빛 레드카펫을 걷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셔서, 고난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뜻을 발견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