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
누가, 누구와?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9절)라고 말한 선지자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만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누가’, ‘누구와’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며 하나님은 비교할 존재가 없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12~26절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광대하신 분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여호와는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고 뼘으로 하늘을 재고 접시저울과 막대 저울로 산들과 언덕들을 달아보시는 분이십니다(12절). 그러한 그분을 가르치고 그분과 의논할 존재는 이 땅에 없습니다(13, 14절).
선지자는 거룩하신 이는 비교할 존재가 없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말합니다(26절). 장인이 부어 만든 이 땅의 우상들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땅 위 궁창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섭리 가운데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18~26절).
피곤한 자에게 새 힘을
우리는 모두 피곤합니다(30절). 여러 인간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선지자는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말합니다. 피곤하지 않으시고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데 우리가 그분을 불신했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말합니다(28절).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앙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31절).
앙망은 여호와를 믿고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이란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는다고 선지자는 말합니다(31절). 새 힘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힘이고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힘입니다. 오늘의 내 삶 속에서 주님을 앙망함으로 이 힘을 얻은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 역사를 창조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로(1절)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를 받는 사람은 광야 같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보라”(9절)라고 외칠 수 있는 소리와 기별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 비교 불가의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게 하시고 광야를 향해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