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 붙는 듯하더라”(에 1:12).
세상 역사에서 일어난 일
에스더 1장은 일반 사회와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일반 역사에서의 이름은 크세르크세스이다)은 인도에서 구스(동북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127도를 다스렸습니다. 대제국을 다스리던 왕은 겨울에 업무를 보는 수산 궁에서 무려 180일 동안 잔치를 벌였고, 수산에 사는 백성들을 위해서는 잔치를 7일간 베풀며 마음껏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습니다(1-5절).
자기 권세에 취한 왕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왕후 와스디를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품위 있는 왕후는 왕의 명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진노해서 왕후를 폐위시켰습니다. 이어서 왕은 페르시아 전역에 조서를 내려, 여자들이 남자의 위신을 무너뜨리는 일을 할 수 없게 했습니다. 이것이 에스더 1장의 전체 내용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성경에
성경은 왜 이렇게 세상 역사를 상세히 전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에스더서의 다음 이야기들을 보며,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과 우주의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왕후 와스디가 왜 왕명을 따르지 않았는지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에스더에게 왕후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강제로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왕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왕후를 사용하도록 하거나, 일부러 왕후가 거부하도록 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건들조차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알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과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또,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을 어떻게 지키시는지를 말하고 있다면, 에스더서는 돌아오지 않은 채 이방 땅에 살아가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고, 왕의 권세와 강대국의 무력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고 계십니다.
기도) 숨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제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