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화요일 예수바리기]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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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

어제 우리는 애가 닳아 사람들과 다투시는(strive)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죽음의 행렬이 끝나기는커녕 악과 죄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또 번성하니 하나님은 얼마나 애타 하시던지요. 하지만 슬프게도 온 세상은 마침내 ‘아담의 형상’으로 가득 차고 맙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사랑 대신에 부패와 포악함과 죄와 악으로 충만하고 만 것입니다(창 6:11-12). 땅의 그 부패함이 말로 할 수 없이 참혹하기만 하니 하나님이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을 하십니다. 그 부패와 포악함이 얼마나 심했으면 친히 창조하신 세상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실 수밖에 없으셨을까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5-7, 13).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7, 13) 이것이 바로 죄의 결국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노를 내리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비통하실까요? 사랑으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을 이제 친히 멸절시키셔야만 하셨으니, 그 비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비통을 성경은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6)라 합니다. 이 말씀에서의 ‘근심’이라는 단어가 원어로는 ‘아짜브’(atsab)인데, 이 아짜브는 그냥 근심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비통도 그냥 비통이 아닙니다.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전해 듣고 아버지 다윗이 가슴을 치며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 하며 가슴을 치며 비통해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그 슬픔과 비통함이 바로 ‘아짜브’(삼하 19:2)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포악함이 가득하여 그 끝날에 이른 세상을 보시고서 바로 그렇게 ‘아짜브’(창 6:6)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눈물로 호소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돌이키고 살지라’ 눈물로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다시 아버지께 갑니다.
바로 우리 때문에 가슴을 치시며 비통해 하시는 사랑하는 하늘 우리 아버지께로….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