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충분한 증거와 그분이 더 큰 일도 할 수 있으심을 보여주셨지만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2:1~12을 읽어 보라.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바란 것은 무엇이며, 그가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은 중풍에 걸려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네 명이 그를 예수님께 데려가야 했다. 지붕을 뜯고 그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보냈을 때, 마가복음 2:5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기록한다. 어떻게 믿음을 볼 수 있는가? 친구들의 믿음과 끈기가 행동으로 보이게 드러난 것처럼 사랑도, 믿음도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이 남자는 무엇보다 육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 앞에 왔을 때 그분이 먼저 하신 말씀은 죄 용서에 관한 것이었다. 그 장면 내내 이 남자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마음 속으로 반대한 이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 모독이며,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에게만 속한 특권을 취한 것으로 여긴다.
예수님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랍비들의 논증 방식을 사용하여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설명했다. 실제로 마비된 사람을 걷게 하는 것과 사람의 죄가 사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할 수 있다면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주장 또한 확신할 수 있게 된다.
미가 6:6~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과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이 종교 지도자들은 정말 중요한 것, 즉 정의, 자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기 견해를 옹호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했다.
(이어서)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증거이며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 앞에서 중풍병자를 바로 고쳐주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음을 알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교훈>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충분한 증거와 그분이 더 큰 일도 할 수 있으심을 보여주셨지만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묵상> 종교 지도자들은 왜 눈앞에서 펼쳐진 진리를 보지 못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종교의 형식에 너무 집착하여 참된 종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는 함정(약 1:27 참조)을 피하려면 어떻게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더 깊은 불신에 빠진 바리새인들 – “그리스도의 태도의 은근한 위엄은 그들의 오만한 태도와는 뚜렷이 대조되었다. 그들은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더 우월한 존재의 임재를 깨달으면서도 고백은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지상에서 죄를 용서하실 권세가 있다는 증거가 굳어갈수록 그들은 더욱 완강하게 불신에 빠져들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침묵시키기 위한 새 술책을 모의하기 위해 병자가 말씀으로 회복되는 것을 보았던 베드로의 집에서 떠나갔다”(시대의 소망, 270).
<기도>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믿음의 증거를 보면서 저의 모습을 통해서 얼마나 믿음이 드러나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믿음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도움을 구하오니, 무엇보다 주님 앞에 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앞에서도 증거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