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이사야 28장 (1) 영화로운 관

26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사 28:5).

영화로운 관

이사야 28~35장은 다시 유다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앞의 1~12장의 배경이 아하스 왕 재위 때였다면, 지금은 히스기야 왕 재위 시절에 있던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비슷합니다. 아하스는 당면한 문제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를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하였고, 지금 히스기야는 애굽을 의지해서 문제를 돌파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는 기름진 평야의 높은 언덕에 영화로운 왕관처럼 우뚝 솟아 있었던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버린 북이스라엘이 쓴 것은 교만한 면류관이었습니다. 교만의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우박, 광풍, 큰물이 넘침같이 주님의 손이 그들의 면류관을 땅에 던져 발에 밟히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3절).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들에게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날에’ 영화로운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5절). 이 남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의 면류관은 제해 버리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친히 그들의 면류관이 되어 주십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교만한 사람들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빈정거렸습니다. 10절의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는 이제 말을 막 배우는 아이들의 말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은 히브리어로 “저자가 하는 소리를 좀 들어보세. 사울라시우, 사울라시우!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심, 즈에르심!”이라고 그대로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상대의 말을 듣기 싫어할 때, 귀를 막고 “에에에에에~” 하는 것과 유사한 행동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13절에서 그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똑같이 돌려주시며,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이방인들이 와서 그들을 붙잡아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안식과 상쾌함을 주려고 하셨으나(12절) 결국 그들은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결국 애굽과 동맹을 맺었지만, 그 동맹은 사망과 언약을 맺은 것이었습니다(15절).

기도) 하나님을 떠난 교만한 동맹은 죽음과 언약을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