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안식일 예수바리기]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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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1-3)

하나님은 지금 참으로 마음이 아프십니다. ‘하나님의 모양’(창 5:1)대로 창조하셨건만 그 형상은 온데간데 없이 희미해져 버리고 ‘아담의 모양’(창 5:3) 곧 ‘아담의 형상’만 남아 있으니, 정말로 마음이 아프십니다. 아담은 이미 죽음을 선고받았으니 ‘아담의 형상’은 슬프게도 이제는 죽음의 형상일 뿐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하셨으니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나아도 모두 결국 흙으로 돌아갈 뿐인 것입니다.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창 5:4-11).
아담,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 모두 다 ‘아담의 모양’ 곧 ‘아담의 형상’일 뿐이니 세월이 쌓일수록 희망 없는 족보만 늘어날 뿐이요, 족보에 이름이 늘수록 죽음의 행렬만 길어질 뿐입니다. ‘죽었더라!’(창 5:5), ‘죽었더라!’(창 5:8), ‘죽었더라!’(창 5:11), ‘죽었더라!’(창 5:14), ‘죽었더라!’(창 5:17), ‘죽었더라!’(창 5:20), ‘죽었더라!’(창 5:27), ‘죽었더
라!’(창 5:31) 죄로 말미암은 ‘아담의 형상들’의 이 죽음의 행렬을 하나님은 도저히 그냥 보고만 계실 수가 없으십니다. 견디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죽음의 행렬 한 가운데로 직접 뛰어 들어 오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아담의 족보에 그 이름을 올리신 것입니다. 죽음의 행렬을 끝장내시고 ‘아담의 형상’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우리 대신 ‘희생제물’(핫타아)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이십니다. 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인 것입니다. 자녀인 우리를 하나님은 하늘 본향 집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늘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이 하루도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할 뿐입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