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 목요일 예수바리기] 대신하여 (사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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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자기에게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접하고 다윗은 대성통곡했습니다.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삼하 18:33). 패륜아인 인류를 대신하여 죽은 아버지가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사야 9:5)이 반역한 아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이사야 53장입니다.
“찔림”과 “상함”과 “징계”와 “채찍”은 예수님께 가해진 물리적 폭력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신 주님의 양팔과 다리에 대못이 박혔고, 그분의 옆구리는 로마군병의 창으로 구멍이 났습니다. 끝에 쇠조각이 달린 로마군의 채찍은 살점을 뜯어내고 깊은 상처를 냈기 때문에 그 가혹한 채찍질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찔림”은 “구멍을 내는 것, 관통”을 뜻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명줄을 끊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이 단어는 사탄과 죄인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에 사용되었습니다. 용을 찔러 명줄을 끊어 놓기 위해 그분이 찔리셨습니다(사 51:9). 심판주가 오히려 살륙되셨습니다(66:16).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시키는 둘째 사망이 그분의 고통의 정점이었습니다. 그 고통 때문에 그분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 지셨습니다. 허물은 권위를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변절, 반역”을 뜻합니다. 죄악은 “구부리다, 비틀다, 왜곡하다”는 뜻입니다. 에덴에서 대기만 자는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서 인류를 타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실대로 우리를 대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셨습니다.
대속적 희생의 궁극적 결과는 우리를 고치는 것입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는 나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응어리져 있는 상처까지 인간의 모든 아픔을 십자가가 고칩니다. 어떤 완악한 죄인이라도 용서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곳,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누구든지 상처를 싸매시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