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금요일 예수바리기] 히브리어로 엿본 하나님의 사랑 (사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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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사야 53장 6절의 “우리는 다”와 “우리 모두”는 원어 성경에서 똑 같은 “쿨라누”입니다. 이 성경절은 “쿨라누”로 시작해서 “클라누”로 끝난다. “우리 모두”를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롬 3:23).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릇 행하여”는 “방황하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타아”입니다. “타아”는 잘못된 관점을 가졌기 때문에 옳은 길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심판자로만 오해하면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무엇이든 용납하는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할 때 사람은 방자하게 됩니다. 자기 욕심대로 만든 프레임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발걸음은 흔들립니다. 우리 모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야 합니다. 세상 것으로 가려진 눈병에서 치료되어 주님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갔거늘”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향하다”는 뜻의 “파나”입니다. “파나”에서 “얼굴”을 뜻하는 “파네”가 파생했습니다. 어디로 얼굴을 향하느냐가 운명을 결정합니다. 롯은 얼굴을 소돔과 고모라 쪽으로 돌렸습니다. 하와의 눈은 선악과로 향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길은 우리가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반대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담당시키셨도다”는 히브리어 “히프기아”입니다. 이 말은 이사야 53장을 끝내는 마지막 단어인 “기도하였느니라”(야프기아)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기도로 아버지 계획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아들이 십자가 길을 자원하여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뜻의 중심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죄를 범한 장본인은 우리입니다. 그런데 그 죄 짐이 종의 어깨로 갔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우리 모두의 죄 짐을 지워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아들의 고난 때문에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를 예수님께 지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이었을 때, 원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