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령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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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은 창조, 성육신, 구속 사업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로 더불어 활동하셨다. 그분은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능력을 충만케 하셨다. 그분은 인간들을 이끄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이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항상 함께 하시도록 성부와 성자에 의해 파송되신 그분은 영적 은사들을 교회에 부여하시며, 교회에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하시고, 성경과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기본 신조, 5.

비록 십자가 사건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좌절과 고뇌와 공포를 안겨 주었지만 부활을 통해 그들의 생애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굴레를 깨뜨리셨을 때 하나님의 왕국은 그들의 심령속에 동이 텄다.
이제는 결코 꺼질 줄 모르는 불길이 그들의 영혼 속에서 타고 있었다. 몇 주일 전까지만 해도 제자들 가운데 거친 장벽을 쌓게 했던 불화는 이제 모두 녹아 버렸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허물을 고백했으며 승천하신 그들의 왕 예수님을 모셔들이기 위하여 자신들을 더욱 완전하게 개방하였다.
한때 흩어졌던 이 양무리의 연합은 날마다 기도로 시간을 보냄에 따라 공고해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그들에게 이르러왔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그들 중에 들려왔으며. 그들의 불붙은 영혼을 보여 주기라도 하는 듯 맹렬한 불길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였다. 성난 불길처럼 성령께서 그들에게 강림하셨다.
성령으로 충만된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해 새롭게 타오르는 사랑과 기쁨을 그냥 간직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공공연히, 그리고 열렬하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국가에서 온 순례자들과 지방민으로 구성된 군중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건물 앞으로 몰려들었다. 두려움과 혼란에 빠진 채 그들은 순박한 갈릴리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 능력 있게 증거하는 소리를 그들의 언어로 듣게 되었다.
어떤 이는 “이것이 무슨 영문인지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이는 “저들이 술 취했다”라고 말하며 무시하고자 했다. 무리들의 웅성대는 소리를 뚫고 베드로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들으시고 본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높임을 받으셔서 우리에게 지금 성령을 주고 계시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행 2).

성령은 누구신가?
성경은 성령을 비인격적인 어떤 힘이 아닌 한 인격체로 계시한다. “성령과 우리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행 15:28)와 같은 진술들은 초기 신자들이 그분을 인격체로 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을 별개의 인격체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4)라고 말씀하셨다.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는 성경절들은 성령을 한 인격체로 묘사하고 있다(마 28:19; 고후 13:14).
성령은 개성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노력하시고(창 6:3). 가르치시고(눅 12:12), 죄를 책망하시고(요 16:8), 교회 일을 지시 하시고(행 13:2), 도우시며 중보하시고(롬 8:26), 영감을 주시고(벧후 1:21), 성화 시키신다(벧전 1:2).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힘이나 영향력, 혹은 하나님의 속성에 의해 행해질 수 없다. 오작 한 인격체만이 이것들을 할 수 있다.

성령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으로 제시한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성령께 거짓말 한 것은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 4)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 32). 이런 일은 성령이 하나님이실 때에만 진실이 될 수 있다.
성경은 성령과 신적 속성들을 관련시킨다. 그분은 생명이시다. 바울은 그분을 “생명의 성령”(롬 8:2)이라고 했다. 그분은 진리이시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진리의 성령”(요 16:13)이라고 부르셨다. “성령의 사랑”(롬 15:30)과 “하나님의 성령”(엡 4:30)이라는 표현은 사랑과 거룩함이 그분의 본성 중 일부임을 계시한다. 성령은 전능하시다. 그분은 영적 은사들을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고전 12:11)신다. 그분은 편재하신다. 그분은 영원히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것”(요 14:16)이다. 그 누구도 그분의 영향권에서 도피할 수 없다(시 139:7-10). 그분은 또한 전지하시다. 왜냐하면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전 2:10, 11)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들은 성령과 관련되어 있다. 창조와 부활 모두에 그분이 관여하신다. 욥은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고 말했다. 또한 시편 기자는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시 104:30)라고 말했다. 바울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고 주장했다.
비인격적인 영향력이나 피조된 존재가 아닌 오직 편재하시는 인격적 하나님만이 신적 그리스도를 한 개인 마리아에게 임하게 하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다. 오순절 때 성령은 받아들이기를 자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일하신 신-인이신 예수님이 우주적으로 임재케 하셨다.
성령은 침례식의 공식 문구(마 28:19), 사도적 축복(고후 13:13), 영적 은사에 관한 말씀(고전 12:4-6)에서 성부, 성자와 동등하신 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령과 삼위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 중에 셋째 위격(位格)으로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하게 자존하시는 분이다. 비록 각 위(位)께서는 동등하시지만 기능상의 경제성이 삼위 일체 내부에서 작용한다(본서 2장 참조),
성령 하나님께 대한 진리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성령이 신자들에게 임하실 때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오신다. 그분은 자기 스스로의 권위로 자기만의 신임장을 가지고 오시지 않는다. 그분의 역사 속에서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명에 집중이 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탄생시에 능동적으고 개입하셨고(눅 1:35), 침례시에 그분의 공중 사역을 인정하셨고(마 3:16, 17),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부활의 유익을 인류에게 가져오셨다(롬 8:11).
신성 내에서 성령은 집행자의 기능을 성취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주실 때(요 3:16),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마 1:18-20). 성령은 계획을 완수하여 실현시키기 위해 오셨다.
창조시에 성령이 밀접하게 개입한 사실은 창조시에 그분이 임재하신 것으로 알 수 있다(창 1:2), 생명의 기원과 유지는 그분의 작용에 달려 있다. 그분이 떠나가시는 것은 사망을 의미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진대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 34:14, 15, 33:4 참조)고 성경은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 문을 열고 있는 각 사람 속에서 그분이 행하시는 재창조 사역을 통해 성령의 창조적 사역의 추적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창조주 성령을 통하여 개인 속에서 수행하신다. 성육신, 창조, 재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시키려 오신다.

약속된 성령
우리는 성령의 거하시는 곳이 되도록 의도된 존재이다(고전 3:16을 보라).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에덴동산과 내재하시는 성령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계속되었으며, 홍수전 시대에 엄청난 사악함 때문에 하나님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 6:3)라고 선언하시기에 이르렀다.
구약 시대에 성령은 특별한 과업을 수행하도록 개인들을 준비시키셨다(민 24:2; 삿 6:34; 삼상 10:6). 때때로 그분은 사람들 “안에” 계신다(출 31:3; 사 63:11). 진실된 신자들은 언제나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육체에게”(욜 2:28 난하 주) 성령을 부어 줄 것이 예고되었다. 이 때는 성령이 훨씬 크게 나타나심으로 새 시대가 열리는 때이다.
세상이 아직도 찬탈자의 손아귀 속에 남아있는 동안 성령의 충만한 부어주심은 미루어져야만 했다. 성령께서 만민에게 부어지기 전에 그리스도는 당신의 지상 사역을 수행하여 속죄의 희생을 치루셔야만 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령의 사역으로 가리키면서 침례 요한은 말했다.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그러나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내용의 언급이 없다. 당신의 죽음 직전에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 17). 약속하신 성령의 침례를 십자가에서 받았는가? 십자가에 달리시던 금요일에 비둘기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오직 암흑과 번개뿐이었다.
부활하실 때까지 그분은 성령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불어넣지 않으셨다(요 20:22). 그분은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9)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능력은 “오직 성령이(너희에게) 임하”(행 1:8)실 때 받게 되어 신자들은 땅 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될 것이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아들이시는 것이 성령님을 부어주시기 위한 전제 요건이었다.
새 시대는 승리하신 우리 주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셨을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오직 그 때에 그분은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실 수 있으셨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신후에 “성령을… 부어주셨느니라”(행 2:33)고 말했다. 이 사건을 열렬하게 고대하는 제자들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행 1:5, 14). 오순절, 곧 갈바리 사건 후 50일 되던 때에 성령께서 모든 능력으로 임재하심과 더불어 새 시대가 개막되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제자들]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2:2-4).
예수님과 성령의 사명은 전적으로 상호 의존적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전까지는 성령의 충만함이 주어질 수 없었다. 그 반면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마 1: 8-21),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시고(막 1:9, 10), 성령에게 이끌리시고(눅 4:1),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기적들을 행하시고(마 12:24-32), 당신 자신을 갈바리에서 성령을 통해 드리셨고(히 9:14, 15), 어떤 의미로는 성령에 의하여 부활하셨다(롬 8:11).
예수님은 성령 충만을 체험한 첫번째 인간이셨다. 간절히 그분을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당신의 성령을 우리 주께서 부어 주시길 원한다는 것은 깜짝 놀랄만한 진리이다.

성령의 사명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에 당신께서 떠나갈 때가 임박했다고 하신 말씀은 그분의 제자들을 크게 괴롭혔다. 그분은 즉시 당신의 개인적 대표자로서 그들이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증하셨다. 그들은 고아처럼 홀로 남지 않을 것이었다(요 14:18).

사명의 기원. 신약은 성령을 독특한 방식으로 소개한다. 그분은 “예수의 영”(행 16:7). “그아들의 영”(갈 4:6), “하나님의 성령”(롬 8:9), “그리스도의 성령”(롬 8:9. 벧전 1:11),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 1:19)으고 일컬어지고 있다. 성령의 사명을 창안하신 분은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혹은 아버지 하나님이신가?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세상에 대한 성령의 사역의 기원을 나타내셨을때 그분은 두 개의 근원을 언급하셨다. 첫째로 그분은 아버지를 언급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요 14:16, 15:26 참조, “아버지께로서”). 성령의 침례를 그분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행 1:4)이라고 불렀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언급하셨다. “내가 그 [성령]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따라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로부터 나오신다.

세상에 대한 그분의 사명. 우리는 성령의 감화를 통해서만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시인할 수 있다.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고 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참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출생하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신다는 보증을 받고 있다(요 1:9). 그분의 사명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요 16:8)하시는 것이다.
첫째. 성령은 우리에게 죄, 특별히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죄를 깊이 슬퍼하도록 하신다(요 16:9). 둘째, 성령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강권하신다. 셋째, 성령은 우리에게 심판에 대해 경고하시는데, 심판은 죄로 어두워진 심령들에게 회개와 회심의 필요를 깨닫도록 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우리가 회개했을 때 우리는 물과 성령의 침례를 통하여 거듭날 수 있다(요 3:5). 그 때에 우리는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자들을 위한 그분의 사명. 성령에 관한 성경절 중 대다수가 그분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분의 성화케 하는 감화력이 순종으로 이끈다(벧전 1:2). 그러나 그 누구도 특정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아니하고는 그분께서 내재하시는 체험을 계속적으로 가질 수 없다. 베드로는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말했다(행 5:32).* 따라서 신자들은 성령을 거스리고, 슬프게 하고, 소멸시키는 것에 대해 경고를 받는다(행 7:51; 엡 4:30; 살전 5:19).
성령은 신자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1. 그분은 신자들을 도우신다. 성령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는 그분을 “또다른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요 14:16)라고 부르셨다. 이 헬라어는 “돕는 자”(Helper, NBU), “위로자”(Comforter, KJV), “상담자”(Counselor, RSV)로 번역이 되었으며, “간구자”(Intercessor), “중보자”(Mediator) 혹은 “대언자”(Advocate)를 의미하기도 한다.
성경에 언급된 유일의 또 다른 파라클레토스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분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 혹은 간구자이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혹 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간구자, 중보자, 돕는 자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이것은 왜 성령이 “은혜의 성령”(히 10:29)이라고 일컬어지는지를 설명한다. 그분께서 기여하시는 가장 큰 점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백성들에게 적용하는 것이다(고전 15:10; 고후 9:4; 요 4:5, 6 참조).
2. 그분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져 오신다. 그리스도는 성령을 “진리의 성령”(요 14:17, 15:26, 16:13)이라고 칭하셨다. 그분의 기능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요 14:26)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요 16:13)는 것이다. 그분의 기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요 15:26). 그리스도는 말씀하셨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 14).
3. 그분은 그리스도를 임재케 하신다. 그분은 그리스도에 관한 기별만을 가져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임재도 가져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돕는 자, 요 14:16, 17]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인성으로 제약받으신 인간 예수님은 편재하실 수 없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떠나가는 것이 유리하였다. 성령을 통하여 그분은 언제든지, 어느 곳에나 계실 수 있으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 17). 예수님은 성령이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요 14:17, 18)라는 보증을 주셨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이시지만 인간의 개성을 갖지 않으신 분이며, 그러기에 독립적인 분이시다.*
성육신 때에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한 인간 마리아에게 임하시도록 했다.
오순절 때, 성령은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임하시도록 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성령을 통하여 실현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약은 구약에서 그분에 대해 결코 사용되지 않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란 칭호를 사용한다”(빌 1:19).
아버지와 아들이 신자들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실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이므로(요 14:23)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을 통해서이다.
4. 그분은 교회의 활동을 주관하신다. 성령이 그리스도께서 임재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분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이시다. 신앙과 교리상의 항구적인 권위의 중심으로 그분이 교회를 이끄시는 방식은 성경과 아주 잘 조화된다. “개신교의 두드러진 특색-이것이 없다면 개신교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은 성령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시요 후계자시라는 것이다. 조직, 혹은 지도자, 혹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 자리에 들어앉는 것이다.”*
성령은 사도 교회를 치리하는 일에 깊이 관여하셨다. 선교사를 선발할 때 교회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그분의 지도를 얻었다(행 13:1-4). 개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은 그들이 “성령이 충만”했다고 묘사한다(행 13:9, 52 참조). 그들의 활동은 그분의 지배하에 있었다(행 16:6, 7).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그 위치를 얻은 것은 성령에 의해서라는 것을 상기시켰다(행 20:28).
성령은 교회의 일치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경은 최초의 교회 총회가 내린 결정에 대해 “성령과 우리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행 15:28)라는 말로 소개하고 있다.
5. 그분은 교회에 특별한 은사들을 주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은사들을 부여해 주셨다. 구약시대에는 “주의 영”께서 개인들 “위에” 임하셨으며, 그들에게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구출할 수 있도록 탁월한 능력을 주셨었다(삿 3:10, 6:34, 11:29, 등). 또한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민 11:17, 25, 26; 삼하 23:2).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자로 사울과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임하셨다(삼상 10:6, 10, 16:13). 어떤 백성들에게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통해 독특한 공예 기술이 임하였다(출 28:3, 31:3, 35, 30-35).
초대 교회 당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은사들을 교회에게 부여하신 것도 마찬가지로 성령을 통해서였다. 성령은 이러한 은사들을 당신께서 적합하다고 보시는 이에게 분배하심으로 온 교회에 유익을 끼치신다(행 2:38, 고전 12:7-11). 그분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데 필요한 특별한 능력을 준비하셨다(행 1:8; 본서16장 보라).
6. 그분은 신자들의 심령을 채우신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 19:2)라고 바울이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은 모든 신자에게 중대한 질문이다.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을 때 바울은 그 제자들 위에 안수했으며, 그들은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행 19:6).
성령에 의하여 죄를 자각하게 되는 일, 그리고 생애 속에 성령이 충만케 되는 일은 별개의 두가지 체험이라는 것을 이 사건은 지적해 준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의 필요성을 지적하셨다(요 3:5). 승천 직전에 그분은 새 신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 28:19)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에 조화를 이루어 베드로는 “성령의 선물”을 침례 때에 받게 된다고 설교했다(행 2:38). 또한 바울은 성령의 침례의 중요성(본서 14장)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긴박한 호소를 통해 인정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해 지는 일,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중생 때 시작된 성화사업을 계속하도록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비를 좇아 구원하시며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딛 3:5, 6)셨다.
“복음 사역이 그토록 힘이 없는 것은 성령의 부재 때문이다. 지식, 재능, 능변, 각종 천부적이거나 후천적인 자질을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그 누구의 마음도 감동시킬 수 없고, 한 사람의 죄인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할 수 없다. 반면에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면, 성령의 은사를 그들이 갖고 있다면, 가장 보잘 것 없고 무식한 그분의 제자라 할지라도 심령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우주에서 가장 고상한 감화가 흘러가는 통로로 삼으실 것이다.*
성령은 필수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변화는 성령의 봉사를 통해서 이르러 오는 것이다. 신자로서 우리는 성령이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만 한다(요 15:5). 오늘 성령은 당신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가장 위대한 선물로 우리의 주의를 돌리신다. 그분은 당신의 호소에 저항하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