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금요일 장년 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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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존귀하게 창조하셨음이 세 천사의 기별에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자유의지를 주셨으므로 그것을 심판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기에 사탄은 이 계명을 무너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런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토록 하며 말세의 소망을 주는 기별이 세 천사의 기별이다.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선포하는 요한계시록 14장의 기별은 전에는 순결하였으나 그 후에 타락한 종교 단체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 기별은 심판의 경고 다음에 주어지는 기별이므로 그것은 분명히 말세에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에만 적용될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로마교는 이미 여러 세기 동안 무너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383).
다니엘 3장의 고대 바벨론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라”(단 3:5)는 명령을 받은 세 히브리인의 이야기는 마지막 날에 영적 바벨론이 거짓 “형상” 숭배를 강요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상징과 모형으로 제시되었다(계 13:15, 계 14:9, 11, 계 16:2, 계 19:20, 계 20:4 참조). 히브리인 세 친구가 왕에게 순종했더라면 어겼을 십계명의 둘째 계명(출 20:4, 5)이, 다른 곳에서 “때와 법을 변개”(단 7:25)하려 한 세력에 의해 훼손된 두 계명 중에 하나라는 것은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세력이 훼손한 다른 계명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가 보았고 또 보게 될, 예배에 관한 모든 문제의 중심에 있으며 마지막 위기의 때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출 20:11, 계 14:7 참조)신 하나님을 경배할 것인지 아니면 짐승과 그의 우상을 섬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중심에 있는 넷째 계명이 바로 그것이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바벨탑은 현대의 영적 바벨론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둘 사이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2.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예수님은 당신의 교회에 권위를 주셨지만, 우리의 종교적 경험을 영적 지도자의 손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교회 권위의 한계는 무엇인가?
3. 바벨론의 죄 중 하나인 우상숭배가 단순히 조각상에 절하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개신교도라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는가?
4. 다니엘 3장과 강요된 경배 사이에 그대가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유사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마지막 날의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인가?
자전거를 탄 이름 모를 남자 (포르투갈)

포르투갈 중부에 있는 인구 100명의 이 외딴 마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웃 마을 너머까지 여행해 본 적도 없는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림교인이 한 명도 없는 이 마을에 베라는 1년간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베라는 70세가 넘도록 글씨를 모르는 애나와 페드로라는 부부에게 성경 공부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대해 공부할 때 애나는 안식일이 일주일의 일곱 번째 날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예, 저도 그게 진리임을 압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베라는 놀랐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의 전통적인 신앙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 후 성경 공부는 레위기 11장의 정결한 고기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습니다. “예, 저도 그게 진리임을 압니다.”라고 애나가 다시 말했습니다. 베라의 놀라서 “그게 진리인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그녀가 어린 소녀였을 때, 한 남자가 토요일 오후에 자전거를 타고 그녀의 마을에 왔었다고 애나는 말했습니다. 그는 마을의 중앙 광장으로 가서, 듣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청중 중에는 애나의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설교를 듣고 나서 그가 진실을 말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안식일마다 왔습니다. 애나의 아버지는 그의 말을 듣고, 그것을 성경 말씀과 비교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성경의 진리만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어린 애나에게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부정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베라는 그 설교자에 대해 듣고 놀랐습니다. 수십 년 전 그의 설교 때문에 그녀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애나를 설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애나는 아버지로부터 진리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진리임을 알았습니다. 베라와 함께 한 성경 공부는 단지 아버지의 말을 확증해 줄 뿐이었습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요 4:37-38) 베라는 그 경험으로 겸손해졌습니다. 오래 전 이름 모를 남자가 한 설교 때문에 베라는 애나와 페드로가 침례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 공부를 함께 도왔던 이 노부부의 아들 벤벤도 또한 침례를 받았습니다. 베라는 이 일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그녀가 선교사로 일을 시작할 때의 이 경험은 그녀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어 선교사로 활동하는 곳이 어디든 그녀는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임무는 씨를 뿌리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베라는 말합니다. “저는 하늘나라에서 그 자전거를 탄 남자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한 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여기 침례를 받은 이 사람들을 보라고 말할 거예요’

제공: 대총회 세계선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