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존 위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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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참다운 그리스도인 영웅들은 모진 억압을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조건 없이 충성했다. 옥스퍼드 신학대학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1320~84) 역시 우리에게 그런 감동을 선사한다. 위클리프는 그리스도의 주권, 성경의 권위,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담대하게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이 못마땅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1377년 5월 22일, 다섯 교서를 내렸고 위클리프가 “잘못된 거짓 명제와 결론을 조장하고, 이교적인 타락을 만끽하고, 교회 전체와 심지어 세속 정부의 지위마저 약화하고 전복하려고 한다.”고 단죄했다.
교황의 교서에 대응해 위클리프는 이렇게 진술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건전한(즉 진실한 정통)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합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율법을 담대히 밝히고 옹호하겠습니다. 저는 목숨을 걸고 저의 확신을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의 결론은 성경과 경건한 박사들을 따른 것이며 만약 제 결론이 믿음에 반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철회하겠습니다.”
1415년 5월 4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위클리프를 파문했고 그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또 그의 책을 불사르고 그의 유해를 매장지에서 꺼내도록 했다. 이 명령은 교황 마르티노 5세에 의해 1428년에 시행됐다. 위클리프가 세상을 떠난 지 이미 43년이나 지난 뒤였다. 여러 교회 당직자들 앞에서 러터워스 묘지에 있는 그의 유해가 파헤쳐지고 불태워졌고 그 재는 근처의 스위프트 개울에 버려졌다. 누군가는 위클리프의 옛 묘비에다가 ‘악마의 도구, 교회의 적,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 자’라고 써 놓았다.
1655년 처음 출간된 『영국 교회사』에서 토머스 풀러는 이렇게 기록했다. “스위프트 개울은 그의 재를 에이번강으로 흘려보냈고, 에이번강은 세번강으로, 세번강은 작은 바다로, 작은 바다는 대양으로 재를 날랐다. 위클리프의 교리는 그 잿가루처럼 전 세계로 퍼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놀라운 진리의 유산이 우리에게도 전달됐다. 위클리프처럼 믿음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와 똑같은 헌신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끝까지 그의 횃불을 전달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최경미 선교사 부부(에티오피아)
낯선 선교지에서 세 자녀가 잘 적응하여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