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창 42:9)
움직이지 않는 형제들 야곱 가정에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 곡식이 있는 줄 알고도 서로 바라만 보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애굽은 자신들이 팔아버린 동생 요셉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곳은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주는, 가고 싶지 않은 땅입니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굶어 죽지 않으려면 가야만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긴 여정을 거쳐 애굽의 총리인 요셉 앞으로 나갑니다. 형제들은 대면한 총리가 요셉인 줄을 아직 모릅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봅니다. 요셉은 그 순간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합니다. 곡식단들이 자신을 향해 절하고 별들이 자신을 향해 절하던 반복된 그 꿈을 기억합니다.
꿈을 생각하는 요셉 요셉은 총리로 성공했지만 자기 가족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을 다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애굽 여인과 결혼하고 애굽에서 낳은 아들들과 그곳에서 번성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을 보는 순간 그 꿈을 생각합니다.
형들에 대한 원한과 복수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꿈을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은혜입니다. 수많은 심적 갈등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꿈을 따라 첫걸음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이 꾸었던 꿈을 생각합니다. 그 꿈과 자신의 꿈을 하나로 묶기 시작합니다. 애굽에서의 인도하심을 떠올리며 아브라함의 꿈을 통해 자신의 꿈을 재해석합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해몽했던 그가 지금은 자신의 꿈을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그들의 12지파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녀들은 서로 헤어집니다. 그러나 야곱의 자녀들은 엄청난 갈등을 경험하면서도 한 가족으로 묶이고 각 지파의 시작이 되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형제들에게 품었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꿈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꿈과 요셉의 꿈을 하나로 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부르심과 하나님이 주신 꿈이 하나 되게 하소서. 그 꿈이 우리 사이의 갈등과 아픔을 넘어 우리의 방향을 결정하고 우리의 인생을 이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