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수요일 장년 교과] 구제할 수 없는 자들은 바로 우리 (사 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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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죄의 저주를 받고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된 이유는 오직 구제 받을 가망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연약한 순 같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어서 멸시를 받는 사람, 이것이 우리에게 제시된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었다(사 53:2~3). 이사야는 그의 순진한 성장기를 지나쳐 곧바로 수렁의 끝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 배경을 알고 있지만 아직 그 종의 최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너무하지 않은가! 이사야는 평강의 왕으로 태어난 그 아기를 소중히 여기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왔다. 다른 이들은 그분을 멸시할지라도 우리는 그분이 정말 누구신지를 알기 때문이다.
“원수가 누군가 봤더니 바로 우리였다”는 말이 있다. 그 종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도망했을 때 다윗 왕(삼하 15:30)도 그 같은 멸시와 거절과 고초의 경험을 겪었다. 그러나 그 종이 짊어진 고난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자기가 지은 죄의 결과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어떤 개인만을 위해 그것을 짊어진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사 53:6)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시험하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도록 선택되었다. 하지만 왜인가? 이사야는 상상하기 어려운 진리의 완성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구제할 수 없는 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구제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였다!
이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종이 “하나님께 맞으며”(사 53:4)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통받는 원인이 그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여쭈었던 것처럼,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본 자들은 더 끔찍한 것을 추측한다.

교훈 :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죄의 저주를 받고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된 이유는 오직 구제 받을 가망이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는 얼마나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 사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어서) 모세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신 21:23, 민 25:4)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사 53:10). 왜일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갈 3:13)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고후 5:21)기 위해서였다.

적용 : 그대 말고 예수님이 구원하시려고 하는 또 다른 구제불능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대는 예수님과 함께 어떻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우리를 위해 치른 값 –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큰 값이 치러졌는가! 십자가와 희생제물로 거기에 달리신 분을 보라. 못박힌 그 손을 보라. 굵은 못으로 나무에 고정된 그분의 발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그분의 몸에 짊어지셨다. 그 고통과 고뇌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값이었다”(엘렌 G. 화잇, God’s Amazing Grace, 172).

기도
아직도 자신이 착하고 의로운 줄 알고 남을 판단하는 저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정죄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구제불능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저의 죄보다 더 강한 줄 믿습니다. 저를 고쳐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