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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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출 25:23-24, 29-30)

하나님은 언약궤와 속죄소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 개의 기구를 성막에 두십니다. 지성소 안에 언약궤와 속죄소, 성소에 진설병 상과 등잔대와 향단, 그리고 성막 뜰에 번제단과 물두멍…. 성막의 이 모든 기구들은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성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진설병과 떡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설병(the bread of the Presence)이라 불린 이 떡은 항상 하나님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출25:23, 30). 떡은 양식입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에겐 먹을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광야에서 양식이 있을리 없으니 하나님은 만나를 양식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먹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므로 이스라엘에게는 또 다른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먹으면 죽지 않을 생명의 양식. 그 양식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요 6:48-51)이십니다. 그 떡을 하나님은 성소 안의 진설병으로 표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설병을 통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의 떡’(요 6:48)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영원히 살게 되길 바라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늘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도 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날마다 먹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원히 살게 되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광야의 성소에서 떡상 위의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새 떡으로 바꿔 진설했습니다. 물려 낸 진설병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었지요. 그런데, 성소에는 식탁도 없고 의자도 없습니다. 당연히 서서 먹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마치 그 첫 유월절 밤에 서서 무교병을 먹었듯이 말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애굽이 아무리 화려찬란 하더라도 우리는 그 애굽에 눌러앉아 살 사람이 아니라 하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 한가로이 앉아서 유유자적 먹을 틈이 어디 있겠는지요? 애굽에 눈을 돌릴 틈이 없는 것은 물론 ‘택한 백성’이라 하며 성소에 앉아 유유자적 ‘교회 놀이’를 할 틈도 없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이 앉아만 있다가는 우리는 예수를 잊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엄한 성소에 앉아 있으면서도 성소이신 예수를 잊고, 말씀을 암송하고 읽고 들으면서도 생명의 떡이요 말씀이신 예수를 잊으며,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 하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잊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소의 제사장들이 그러했듯이 하늘 향해 가는 길에 앉아 쉬지 말고 서서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일어나 하늘로 쉬임없이 행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의 떡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