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다”(창 26:9).
하나님의 지시
흉년이 들자 이삭은 풍요의 땅인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남쪽 블레셋 지역인 그랄로 갑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삭과 함께하고 복을 주고 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반복된 거짓말
그랄에서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아내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리브가의 미모로 인해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이 블레셋 왕에게 들키자 이삭은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사실 그랄에서 많은 복을 누렸고 백배나 되는 농사 수확을 거두고 거부가 되었지만 그랄은 정확히 하나님이 거하라고 지시한 바로 그 땅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그랄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갔을 때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앞에 말씀하신 바로 그 약속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23절). 이삭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은 불렀습니다. 그때서야 이삭과 그렇게 다투었던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28절)며 그들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기를 요청합니다.
내 생각에
아브라함처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계속합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도 자기 생각에 따라 그것을 살짝 조정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눈은 어두워지고 하나님보다는 앞에 있는 다른 위험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인 축복으로 인해 이웃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주신 땅의 영역인 브엘세바(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관용어는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이다)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약속을 확인해 주십니다. 예배가 회복됩니다. 그러면 이웃은 우리의 물질적 성공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심을 확인하며 우리를 두려워합니다(28절).
이렇게 신앙이란 하나님의 지시를 온전히 순종할 것인가 혹은 내 생각에 맞게 살짝 슬며시 조정할 것인가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주님의 지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내 생각으로 조정하는 일을 멈추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