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왜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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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믿음의 시련?

믿음의 시련은 하나님이 직접 요구하기보다는 허락하시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예를 들어 욥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하나님이 직접 아들을 바치라는 경우에는 좀 다른 국면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요구를 순종하는 데는 당연히 믿음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상당한 고민이 동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 흐름은 믿음의 성장보다는 현재의 믿음을 확인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몰렉 신에게 자녀를 바치는 경우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입니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얻기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식을 바칩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경우는 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신비와 하나님의 마음

십자가는 구속사업의 기본이자 완성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많은 신학적 설명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는 어떤 신학적 설명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제물도 실제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저는 하나님의 마음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얼마 전 아들 이스마엘을 떠나보낸 아브라함은 이제 독자인 이삭을 떠나보내야 합니다. 믿음으로 부활을 바라보지만, 아내에게는 전혀 상의 한마디 하지 못합니다. 아들 이삭에게도 속을 온전히 터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그의 마음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오늘 저는 그냥 하나님이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영원히 함께 시간을 보낸 아들과 단절을 겪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인간 아브라함과 이삭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로 인해 아파할 때,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구속사업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자녀들을 생각하며, 영혼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아프고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주님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이 마음이 사랑이고 구원입니다.